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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지리산 화대종주(3)-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

by 박은석


애초부터 무리였을까?

그냥 남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처럼 성삼재에서 출발해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나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일정을 잡는 것이 나았을까?

화대종주를 완주한다고 해서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한 몽니를 부린 것은 아닐까?

산에 왔으면 산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굳이 종주를 한답시고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다리도 아픈데 지금이라도 일정을 바꿀까?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면서부터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감쌌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올라오는 길이 너무나 고되었다는 게 일차적인 이유였다.

그다음으로는 두 다리에 쥐가 났다는 것, 세 번째는 오르막길을 조금만 가더라도 숨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힘들게 종주를 했지만 작년과는 또 다른 어려움들이 몰려왔다.

이미 계획했던 시간대로의 산행은 힘들게 되었다.

노고단까지 오는 데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지체되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숙박을 예약한 장터목대피소까지는 23킬로미터 정도 남았다.

1시간에 보통 2킬로미터를 걷는데 조금만 힘을 낸다면 12시간 이내에 장터목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노고단에서 조금 쉬다가 아침 8시에 출발한다고 하면 저녁 7시에는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피소에는 저녁 7시 이전에만 들어가면 된다.

7시 이후에는 대피소 예약이 자동 취소된다.

만약 예약한 사람이 저녁 7시까지 대피소에 도착하지 못하면 탐방자원센터 직원들의 마음이 급해진다.

등산객에게 전화를 해서 산에 왔는지, 지금 어디쯤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 그런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

그러려면 저녁 7시 이전에는 반드시 대피소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만약 장터목대피소까지 가지 못한다면 그전에 있는 세석이나 벽소령에라도 들어가야 한다.

계산이 점차 복잡해졌다.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 가는 3킬로미터의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능선을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지리산 종주 시작이라는 생각이 발걸음을 힘차게 하는 것 같다.

임걸령에서 2킬로미터를 더 가면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맞닿는 봉우리인 삼도봉에 이른다.

여기서 잠깐 쉬고 가려고 했지만 사진 찍는 사람이 너무 많아 숨만 돌리고 지나쳐야 했다.

중간중간 짤막하게 쉬기는 했지만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면 연하천대피소까지 가야 했다.

거기 가야 비로소 식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떠날 때 5개의 물통에 물을 채웠고, 노고단에서 물을 갈아 채웠다.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는 10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2킬로미터마다 물통 하나의 분량을 마시기로 했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옷이 땀에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땀으로 수분이 빠져나간 만큼 물을 마셔줘야 한다.




작년 지리산 종주 때 기진맥진한 경험이 있다.

그때 소금을 먹은 후 기력을 회복했다.

이번에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려고 간간이 소금을 섭취했다.

편안하게 아침, 점심식사를 할 겨를도 없었다.

잠시 쉴 때 삼각김밥, 호두과자, 자유시간을 먹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몸의 기력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호흡이 거세졌다.

체력이 약해서 그런 것인지 심장이 약해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걷는 게 힘들어졌다.

더 이상 걷기 힘들 것 같을 때 연하천대피소가 눈에 들어왔다.

연하천대피소에는 샘물이 바로 건물 앞에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없던 힘을 불러왔다.

샘물 앞에 털썩 주저앉아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갔다.

머리에 물도 뿌렸다.

엄격하게는 대피소 샘물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일단 살아야 했다.

살고 싶었다.

연하천의 차가운 샘물이 나를 살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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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종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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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三道峯)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삼도봉에서 죽을동 살동 걷다 보면 연하천대피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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