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산행에서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식수를 제때 공급받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식수 공급지가 나올 때까지 마지막 한 모금의 물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름날 땡볕을 맞으며 걷는 산행에서는 물관리가 목숨처럼 중요하다.
지리산 화대종주 중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출발지인 화엄사를 비롯하여 노고단대피소, 임걸령샘터, 연화천대피소, 벽소령대피소, 선비샘, 세석대피소, 장터목대피소, 치밭목대피소가 있다.
노고단에서 물을 보충했으면 임걸령 정도는 지나칠 수 있다.
기껏해야 3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임걸령을 지나면 연화천대피소까지 7~8킬로미터를 가는 동안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없다.
높낮이가 심한 길이 아니어서 체력적인 부담은 적지만 4~5시간 동안 걷다 보면 물통의 물이 금세 바닥이 난다.
그래도 이번 산행은 여유가 있다.
물통을 무려 5개나 준비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상시에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다.
물보다는 커피를 많이 마신다.
논산훈련소에서 6주간의 훈련을 끝에 야간행군이 있었다.
30킬로미터 이상 걸었던 것 같은데 그때도 내 물통에는 물 대신 자판기커피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에서는 커피 대신 물이었다.
배낭 안에 편의점에서 구입한 2병의 커피가 들어 있었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물병만 찾을 뿐이었다.
한 모금의 물을 마시며 손바닥에 한 움큼의 물을 받아서 얼굴에 뿌렸다.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물이 동날 것 같았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표지목이 나오면 그때 물을 마시기로 했다.
표지목은 500미터마다 나왔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마을에서 5리(2㎞)만큼 멀어질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그때 심은 나무가 바로 ‘오리나무’이다.
나그네들은 오리나무가 나올 때마다 한숨 쉬었을 것이다.
나는 500m마다 만나는 표지목 옆에서 쉬기로 했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할 즈음에는 체력이 거의 바닥이었다.
새벽부터 두 다리에 쥐가 났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산행이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연하천 샘물 옆에 주저앉아 있었다.
물이 생명이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졌다.
연하천의 맑은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고, 발을 적시고 잠시 앉아 있었더니 다시금 힘이 생겼다.
오래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배낭을 짊어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20분 힘차게 걸었다.
그때 내 앞에 낯익은 얼굴의 젊은이가 서 있었다.
간밤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이다.
노고단 못 미쳐서 내가 지쳐 있을 때 나를 앞질러 갔던 이다.
그이가 이정표 표지목 옆에 서 있었다.
무릎 통증이 심해져서 산행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까운 대피소로 들어가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지리산 종주길에 여러 사람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다.
하지만 나의 길에 그를 끌어들일 수 없고 그의 길에 나를 끌어들일 수 없다.
조금 도움을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각자의 길은 각자가 가야 한다.
사실 나도 나의 길을 걸어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점점 더 다리에 힘이 빠져갔다.
장터목대피소까지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세석대피소까지만이라도 가자고 마음을 다졌다.
하지만 30분도 안 되어 그 마음도 접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4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벽소령까지는 어떻게든 가겠지만 더 이상 걷기는 무리일 것 같았다.
마음을 정했다.
‘벽소령에서 묵자!’
비겁한 것 같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때로는 경로를 수정해야 할 때도 있다.
지금과 같은 때가 그렇다.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벽소령에 도착했다.
“다리 근육경련 때문에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요. 여기서 묵게 해 주세요.”
간절히 사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