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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지리산 화대종주(2)-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by 박은석


새벽 2시.

알람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간밤에 게스트하우스 맞은편 방에 묵고 있는 30대가 있었다.

부산에서 왔는데 화대종주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대피소를 어디로 정했냐고 물으니 세석이라고 했다.

나는 거기서 두세 시간은 더 가야 나오는 장터목이다.

내가 좀 무리하게 잡기는 했다.

지리산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꾸준히 산을 타는 사람이 아닌 입장에서 장터목은 미친 짓이라고 할 것이다.

12년 전에 장터목에서 묵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올라간 것이고 젊었다.

지금은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만 가더라도 어림잡아 3시간의 난코스이다.

지리산에서 만난 여러 사람이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세요?”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하나였다.

“미쳤죠. 미친 짓 해 보려고요.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요.”

생각해 보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미친 짓 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쨌든 그 젊은 친구와 50대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내가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둘 다 화대종주는 처음이니까 조금은 벗 삼아서 조금은 경쟁 삼아서.

그런데 새벽 2:30에 출발하자던 약속이 틀어졌다.

옆방에서는 계속 알람 소리가 들리는데 그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옆방에 들어갈까 하다가 몇 사람이 자는지도 모르고 해서 그냥 혼자 출발하기로 했다.

땀이 흐를 것을 대비해서 머리띠를 띠고, 넘어질 때 다칠 수도 있으니까 장갑도 꼈다.

모자를 쓰려고 하다가, 헤드랜턴 생각이 났다.

집에서 배낭을 챙길 때 몇 번이나 넣었다가 뺐다가 했었다.

그런데 헤드랜턴이 없었다!

배낭 여기저기 뒤져보아도 없었다.

아마도 집에서 마지막으로 배낭 정리할 때 빠뜨린 것 같다.

낭패다.

랜턴이 없으면 야간산행을 할 수 없다.

날 밝은 후에 출발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보였다.

‘그래, 이거면 돼.’

그렇게 산행이 시작되었다.

KakaoTalk_20240803_210400320_23.jpg 헤드랜터 없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오케이, 출발!


다락방 게스트하우스에서 30분쯤 올라가는 화엄사 가는 길은 고즈넉했다.

오른쪽으로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고 별빛도 밝았다.

문득 12년 전에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갈 때 보았던 별이 총총한 하늘이 보고 싶었다.

그날은 내 머리 위로 별이 쏟아지는 듯했다.

이번에도 그런 별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밤이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았다.

빈센트 반 고흐를 가슴 떨리게 했던 별이 빛나는 밤이 한없이 그립기만 했다.

화엄사에 도착하면 등산로를 쉽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막상 도착해 보니 그런 건 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화엄사 경내에 들어가는 문은 모두 닫혀 있었고 그 옆으로 노고단과 천왕봉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였다.

하절기 탐방 시간은 새벽 3시부터 시작이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그때 시간은 새벽 3시 5분이다.

거기서도 법을 어기지 않으려는 모범생 기질이 발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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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가는 길과 밤 하늘. 분명 별이 빛나는 밤일 텐데 가로등 불빛에 별빛이 흐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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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지리산 종주 들머리와 지칠만 하면 나오는 이정표. 이정표가 보이면 무조건 반갑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는 7킬로미터가 넘는다.

해발고도 200미터에서 1,500미터까지 오르는 무척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거기까지 3시간 만에 올라가서 노고단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꿈이었다.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오른쪽 다리에 경련이 왔다.

이어서 왼쪽 다리에도 경련이 왔다.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설상가상으로 등산로를 이탈해서 숲속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두세 번 거듭했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몸이 지쳐갔다.

날은 희뿌옇게 밝아오고 일출은 지난 것 같다.

잠시 돌 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간밤의 그 젊은이가 보였다.

새벽 2:30에 출발하지 못해 미안해했다.

괜찮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씩씩하게 나를 지나쳐 저만큼 멀어져가는 그를 바라보면서 이번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픈 다리를 추스르고 숨을 헥헥거리며 겨우 산을 넘었다.

무너질 것 같을 때 노고단 고갯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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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에서 4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노고단대피소. 안개에 묻혀 있다가 내가 도착하니 반갑다고 하늘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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