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30분.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간밤에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저녁 8시까지는 깨어 있었던 것 같은데 20㎞가 넘는 산길을 걷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나 보다.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기절한 듯이 잠을 잤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곤히 자고 있었다.
새벽 3시부터 탐방로가 열리니까 부지런한 사람들이 몇 있을 줄 알았다.
아무도 없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취사실로 갔다.
내 뒤를 이어 6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취사실로 들어왔다.
아직 전깃불도 꺼져 있었다.
이것도 새벽 3시나 되어야 켜지나 보다.
밥을 먹어야 한다.
야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아침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밥이다.
어쩌면 하산할 때까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밥일 수 있다.
지난밤에 참치김치찌개를 먹다가 남겼다.
밥도 남겼다.
코펠에 넣어 고이 보관했다.
집에서라면 버렸겠지만 산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식사가 없다.
뜨끈하고 얼큰한 찌개국물에 밥을 말아서 먹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쪽에서 조용히 식사를 마친 아저씨는 곧바로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새벽 3시였다.
나는 양치도 하고 괜히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조금 더 보냈다.
‘이 새벽에 굳이 여기를 떠나야 하나? 날이 밝은 후에 떠날까?’ 갈등을 했다.
하지만 대피소는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야 하는 곳이다.
안주하는 곳이 아니다.
떠나야 하는 곳이라면 지금 떠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벽소령대피소를 뒤로하고 세석대피소를 향해서 한 걸음씩 내디뎠다.
사방은 온통 안개가 자욱하였다.
산 밑에서 보면 구름으로 보일 것이다.
야간산행에서는 등산로를 잘 따라서 가야 한다.
등산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낭떠러지를 만날 수도 있다.
등산로와 낭떠러지는 바로 곁에 붙어 있다.
삶의 길도 그런 것 같다.
한 발자국 차이로 안전과 불안이 함께 한다.
걸으면서도 머릿속은 계속 계산을 한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4시간,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2시간,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1시간 30분.
이 정도의 속도라면 오전 11시에 천왕봉 정상에 설 수 있다.
만약 속도를 끌어올린다면 10시에 가능하지 않을까?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의 하산길 11㎞를 5시간으로 잡는다면 오후 3시 이후에 대원사에 도착한다.
거기서 버스를 타서 원지터미널로 가고 다시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면 늦어도 새벽 1시는 될 것 같다.
속도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진다.
설상가상으로 무릎보호대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머리끈과 팔토시로 무릎을 조여 맸다.
속도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속도를 더 늦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화대종주를 포기할까?
천왕봉에서 그냥 중산리로 하산할까?’ 그런데 포기는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도전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어디서 물소리가 났다?
‘이 산중에 웬 물소리지? 아! 선비샘이다.’
12년 전 첫 번째 지리산종주 때, 물병에 물이 딱 한 모금밖에 없었을 때 선비샘을 만났었다.
선비샘은 나에게 물만 준 것이 아니었다.
쉼과 희망도 주었다.
어쩌면 지금 세상은 선비샘 같은 사람이 필요한 세상인 것 같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천왕봉에서의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일었다.
그때 마음 넉넉한 분이 다가와서 천왕봉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심이 후하다.
마주치면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먼저 건네고, 힘내라고 격려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눠준다.
산 아래서는 서로 아웅다웅하며 사는데 산 위에서는 서로 나누며 산다.
산이 사람을 바꾸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산 위로 올려보내면 어떨까?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세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