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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09. 2024

1박 2일 지리산 화대종주(7)-세석에서 천왕봉으로


결국 사달이 났다.

왼쪽 무릎 통증이 심해졌다.

오르막길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내리막길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옆으로 왼발 먼저 내려가고 그 자리에 오른발을 옮기는 식으로 해야 통증이 적었다.

그런 식으로 가야 한다면 2시간 거리가 2시간 30분은 걸릴 것 같았다.

숨이 가빠오는 시간이 잦아들었다.

벽소령에서 세석까지는 고작 7㎞ 정도인데 벌써 체력이 고갈되고 있었다.

출발할 때는 3시간 이내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3시간 30분 만에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아침 7시.

대피소 밖은 한산했다.

세석대피소에서 묵는 사람들은 천왕봉 일출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니 새벽 일찍부터 대피소를 떠날 이유가 없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지리산을 종주하려면 세석대피소에서 1박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

대피소 앞으로 확 트인 골짜기 전경도 좋고, 물도 많아서 좋다.

하지만 나는 잠시 앉았다가 출발해야 한다.




한 20분 쉬었나 보다.

다시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9시까지는 장터목에 도착하고 싶었다.

거기서 잠시 쉬었다가 1시간 30분 등반해서 11시에 천왕봉 정상 도착이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아서 좋았다.

무릎 통증이 있어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장터목대피소에는 금방 도착한 것 같았다.

예상한 시간을 조금 지난 오전 9시 10분이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장이 섰다고 하는데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이곳까지 올라왔을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얼마나 강체력이었을까?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산을 넘었을 것이다.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그냥 좋아서 산을 넘는 것이다.

훨씬 잘 먹고 훨씬 좋은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있다.

그러니 이 힘든 시간을 견뎌보자.

그렇게 나 자신에게 격려를 했다.

이제 정말 힘든 코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터목대피소에서는 벌써 천왕봉 정상을 찍고 내려온 사람들이 즐겁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처럼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잠시 간식을 먹고 곧바로 출발했다.

곧바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졌다.

제석봉까지 가는 길에 몇 번을 멈췄는지 모르겠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주문을 외듯 했다.

나보다 늦게 올라온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가는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지친 나를 보면서 염려의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대종주 중이라고 하면 너무 힘들 것이라며 무릎 상태가 안 좋으니 중산리로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을 하고 갔다.

내 마음도 계속 요동치고 있었다.

화대종주를 완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여기서 포기할까?

포기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도전은 지금 아니면 못 하잖아?

그래, 천왕봉까지는 어떻게든 가 보자.

그리고 하산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몸의 기력은 계속 빠져나갔다.

다리의 힘도 점점 약해졌다.

숨이 더 가빠졌다.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천왕봉도 한 걸음씩 가까워졌다.

마지막 암벽구간에 들어섰다.

나무계단과 철제계단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지만 나에게는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천왕봉 10미터 앞에서 한 5분 정도 쉬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기다시피 하면서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 너무 힘들었다.

감격과 감동을 느낄 수조차 없었다.

남들은 사진 찍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지만 나는 드러누울 데를 먼저 찾았다.

그리고 가방을 내려놓고 바위에 기대어 누웠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한참 만에 일어났다.

정상석으로 다가갔다.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는다.

지리산을 오르는 이유는 한국인의 기상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 기상을 마음에 담았다.

장터목대피소. 이곳에서 장을 열었던 옛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분들에 비하면 나는 훨씬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포기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도전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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