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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6. 2024

광복절의 주인공들을 찾고 싶다

얼마 전에 딸아이의 생일이 있었다.

밤 12시가 지나자마자 딸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딸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생일 축하의 시간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케이크를 준비했고 선물도 준비했다.

그날은 우리 가족에게는 딸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었다.

일 년 365일 각 날에는 그날의 중요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역사적인 의미가 날에 담겨 있다.

어떤 날은 누구의 생일이고, 어떤 날은 누구와 누구의 결혼기념일이고, 또 어떤 날은 떠나간 이를 기리는 추모일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마다 돌아오는 365일의 날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미래의 일들을 계획하게 된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도 그렇다.

그래서 달력에는 국가의 중요한 기념일들도 표시되어 있다.

그 기념일의 주인공은 그날을 의미 있게 만든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념일이 되면 그들을 기억한다.




우리에게 3월 1일은 삼일절이다.

이 날의 주인공은 1919년에 만세운동을 펼친 사람들이다.

민족대표 33인도 있고, 파고다공원에서 만세를 외친 사람들도 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에 동참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1차적으로 3월 1일, 삼일절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삼일절이 되면 그들이 외친 만세 소리를 들어보고, 그들이 소망했던 나라를 생각해 보고, 그들이 당한 고통과 아픔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삼일절을 가장 잘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삼일절의 주인공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삼일절이 공휴일이니까 놀기 좋은 날로 삼는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날로 만들려고 한다.

경치 좋은 곳에도 가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내더라도 삼일절을 공휴일로 삼을 수 있게 해 준 1919년 3월 1일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우리에게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다.

광복을 찾았다.

1910년 8월 29일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으니까 무려 34년 11개월 17일 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이날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는지 이날을 기념하여 광복절로 삼았다.

그렇다면 광복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당연히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의 날로 만든 사람들이다.

내선일체라고 하면서 일본인과 조선인은 하나라고 했을 때, 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라고 외친 사람들이다.

창씨개명을 하고 신사참배를 하면서 조선인은 일본왕의 백성이라고 했을 때, 핏대를 세우며 조선인은 일본왕의 백성이 아니라고 저항했던 사람들이다.

총칼로 윽박지르고 서대문형무소에 가두고 온갖 고문을 가하더라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사람들이다.

상해로, 연해주로, 간도로, 만주로 피해 다니면서도 목숨 걸고 저항했던 사람들이다.




생일은 생일을 맞은 사람을 축하하는 날이다.

추도일은 떠나가신 분을 기리는 날이다.

념일은 그날을 기념일이 되게 만든 분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광복절이 되었는데도 광복을 위해서 애쓴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고 말았다.

광복절을 광복절이라고 부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광복절을 광복절이라고 부르기 싫으면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들은 그러지도 않는다.

꼭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괜히 자기가 뭐 좀 공부했다고 하는 티를 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전에는 쓰지도 않았던 새로운 말을 만들어 가지고 유식한 척 떠든다.

그들이 내 눈앞에는 안 본이면 좋겠는데 텔레비전만 틀면 보인다.

포털사이트의 뉴스만 봐도 보인다.

광복절의 주인공들을 기억하고 싶은데 자꾸 이상한 얼굴들이 어른거린다.

너무 화가 난다.

광복절의 주인공들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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