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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7. 2024

갑작스런 설악산 당일 종주, 한계령-대청봉-오색(1)


여름이 가기 전에 설악산에 한번 가 보고 싶었다.

더 이상 기회를 늦출 수가 없어서 월요일 하루 시간을 냈다.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을 쪼개서 가야 하기에 당일에 끝낼 수 있는 코스를 잡았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하는 일정이다.

물론 가장 짧은 코스는 오색약수터가 있는 남설악탐방지원센터에서 대청봉을 오고 가는 왕복 10킬로미터의 코스이다.

한계령에서 출발해서 대청봉을 찍고 한계령으로 돌아오는 왕복 코스는 16.6킬로미터이다.

한계령에서 출발해서 대청봉을 찍고 오색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13.3킬로미터다.

내 체력과 몇 번의 등산 경험에 의하면 나는 1시간에 2킬로미터 정도를 걷는다.

그러니까 이번 산행에서도 짧게는 6시간, 길게는 8-9시간 소요될 것이라 생각했다.

코스를 짜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계령도 좋고 오색도 좋았기 때문이다.

일단 한계령에 도착해서 정하기로 했다.




여름철 한계령휴게소의 주차 가능 시간은 저녁 8시까지라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주차장에 연락해 보면 저녁 7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한계령휴게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에 열대야를 피해 그곳에서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등산객들이 장시간 주차하는 일이 잦아지자 관광버스들이 출입하기에 어려워졌다.

그래서 밤에는 주차장 출입을 막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느긋하게 출발을 했기에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휴게소도 들러보고 화장실에도 다녀오고 사진도 몇 장 찍으면서 몸을 풀었다.

본격적인 산행은 오전 11:30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한계령휴게소에서의 등반은 몇 번 경험이 있기에 반가움이 앞섰다.

예전처럼 대청봉까지 4시간이 걸린다면 가는 데 4시간 오는 데 3시간 잡으면 넉넉하게 저녁 7시 이전이면 끝날 것 같았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몸을 풀면서 사진 몇 컷
한계령휴게소 들머리에서부터 가파른 길이 시작된다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그리고 예전의 체력과 지금의 체력도 같을 리가 없다.

한계령휴게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1시간도 못 가서 몇 번을 허걱대었는지 모른다.

이정표가 나오면 반가운데 남은 거리를 보면 ‘애걔. 겨우 이 정도밖에 못 왔나?’

이정표가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시간은 가는데 진도는 너무 느렸다.

1시간을 올랐는데 2킬로미터는커녕 1.5킬로미터밖에 못 나갔다.

2시간이 지났을 때는 총 3킬로미터 걸었을 뿐이었다.

정상까지는 5킬로미터 넘게 남았다.

아무리 오르막길이라고 하지만 이 속도라면 일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상까지 4시간을 생각했는데 5시간으로 수정했다.

오후 4:30에 대청봉을 찍고 잠시 쉬었다가 5시에 하산하는 거다.

그런데 8시 이전에 8킬로미터 넘는 거리를 되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한계령은 점점 희미해지고 오색이 자꾸 떠올랐다.

1시간 걸어서 1킬로미터면 어느 세월에 가나? 바쁜 걸음에도 바위틈에 핀 꽃 한 송이가 보여서 지나치지 못하고 한 컷 찍었다.

한계령은 점점 멀어지고 대청봉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아직은 까마득하다. 곰탕 색깔 가득한 배경에서 한 컷.


일기예보를 봤을 때는 오전에는 흐림이고 오후에는 맑음이었다.

예보가 맞을 때가 얼마나 있을까마는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한계령에서도 흐림이었고 설악을 걷는 내내 흐림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배경을 잡으려고 하면 산 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곰탕이었다.

죽을 둥 살 둥 할 때쯤이면 고개를 넘어간다.

설악도 마찬가지다.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는데 끝청이다.

여기서는 잠시 쉬어야 한다.

한계령에서 4시간 만에 도착했다.

다리에 쥐가 나서 속도가 느려진 감도 있다.

스프레이를 뿌려가며 응급처치를 했지만 단 1분이라도 앉아서 쉬어야 근육통이 가라앉았다.

어쨌든 끝청에서 대청까지 1.5킬로미터가 넘는 거리가 남았다.

1시간은 더 가야 한다.

부담이라기보다 희망이다.

1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거다.

대청봉 밑의 중청대피소까지는 그리 어려운 코스가 아니다.

길을 알기에 힘이 났다.

통증은 있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곰탐 배경이라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끝청에서의 조망은 좋았다. 잠시 쉬면서 체력 보충하고 대청봉을 향해 힘껏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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