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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길을 걸을 때 보이는 풍경
by
박은석
Nov 5. 2020
얼마 전부터 동네 길을 즐겨 걷고 있다.
전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냇가를 따라 길게 조성된 산책길을 주로 걸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들이 무섭게 질주하는 것이 얄미워서 한적한 길을 찾다 보니 동네 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담벼락 대신 조성된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길, 주택가 사이사이로 나 있는 골목길,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을 따라 이어지는 가로수길이 내가 걷는 길이다.
얼추 아파트 세 개 단지와 주택가 두어 블록을 돌면 30분이 훌쩍 지난다.
5천 걸음이 채워지는 것이다.
가로수들이 꽤 무성하게 자라서 봄에는 벚꽃 향기 날리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고, 가을에는 단풍잎 빨간 빛깔과 은행잎 노란 빛깔로 한껏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도시의 아파트 사잇길이란 아침저녁에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잠시 북적일 뿐 그 외의 시간에는 간간이 사람들 몇이 지나는 정도이다.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를 가더라도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버스정류장마저 한산하다.
이렇게 내가 걷는 길은 고즈넉하면서도 적당히 들리는 자동차 소리들이 알맞게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사이에 적당한 넓이로 마을공원도 형성되어 있다.
자동차로만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숨바꼭질하듯이 숨어 있는 마을공원은 도시의 숨통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마을공원들은 하루 종일 여러 사람들을 맞이한다.
새벽에는 일찍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을 위한 체력단련장이 되고, 한낮에는 햇빛을 쬐러 나오신 어르신들의 일광욕장이 되며, 오후 늦은 시간에는 유치원과 학교를 마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마을공원에는 간단한 운동기구들과 미끄럼틀, 시소, 모래밭, 잔디밭 그리고 키 큰 여러 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길을 걷다 좀 무료하다 싶으면 마을공원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 된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사람 보는 재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공원을 지키는 꽃들과 나무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봄볕에 흐드러지게 피는 개나리와 진달래, 철쭉을 보면 “산에는 꽃 피네”라며 노래했던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생각나고, 가을 한복판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을 보면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이 떠오른다.
특히 요즘과 같은 가을에는 나뭇잎들이 환상적인 색깔을 자아낸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온갖 여유로운 호사를 다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여유를 가진 후 일어나서 다시 길을 걷는다.
넓은 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서면 3~4층 빌라들이 어깨동무하듯이 사이좋게 늘어서 있다.
주차공간이 좁아 자동차들이 길 한쪽을 차지하고 군데군데 속살처럼 터져 나온 생활쓰레기들이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하지만 생활쓰레기를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으니 이것도 동네의 운치라 하겠다.
고고학 유적지에서 조개껍데기 무더기가 있는 곳은 그 옛날에는 쓰레기장이었지 않은가?
쓰레기가 유물이 되기도 하니 미래의 유물들을 미리 둘러보는 것도 축복이라 생각하며 지나친다.
골목길 양편으로는 식당, 미용실, 노래방, 치킨집, 피자집, 카페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데 ‘아, 여기에 이런 것도 있구나!’하는 새로운 발견들을 한다.
나중에 꼭 한번 와 봐야겠다고 점찍어두는 가게들도 생긴다.
자동차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 동네 길을 걸을 때에라야 보이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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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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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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