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整理)

by 박은석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사무실의 앉았던 자리를 정리한다.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펼쳤던 책과 필기구들을 가지런하게 한 쪽으로 치우고 어지러운 것이 없는지 살펴본다. 집에 와서는 분리 배출해야 하는 쓰레기와 음식물을 버린다. 아이들이 어지럽혀 놓은 방들도 깔끔하게 청소한다. 하루라도 정리하지 않는 날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하루라도 어지럽히지 않는 날이 없다는 것이다. 왜 내 주변은 이리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것일까? 그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없으면 정리할 것도 없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라서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올 때는 빈 몸으로 왔는데 살다 보니 살아온 만큼 가진 것도 늘어만 갔다.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을까? 아마 그것이 없으면 살기 힘들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모으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것은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얼마나 사용했을까? 결혼할 때 구입한 10인용 전기밥솥은 집들이할 때 한 번 사용한 것 같다. 운동하려고 구입한 러닝머신은 정작 빨래를 널 때나 쓰이는 것 같고, 자전거는... 어디엔가 분명 있을 것이다. 배달음식 시킬 때 따라왔던 일회용 숫가락 젓가락은 휴가 때나 캠핑 때 쓰려고 모아두었는데 벌써 한 통 가득 찼다. 공동주택의 음식물 쓰레기통에는 과일과 야채들, 냉동실에 두었던 생선들까지 고스란히 버려진다.


한때는 그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돈과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구해서 집안 깊숙이 고이 모셔두었는데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진 것이다. 쓰이지 않는 것은 결국 쓰레기가 될 뿐이다. 돈을 얼마를 들여서 구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쓰임 받지 않으면 버려질 뿐이고 쓰임을 받지 못하는 물건을 반기는 곳은 쓰레기장 밖에 없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쓰지도 않을 물건들을 모으느라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 많은 물건들 때문에 오히려 내가 쫓겨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상방, 컴퓨터방, 옷방은 있는데 내 방은 없어진지 오래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물건이 주인이 되어버린 이상한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정리해야 한다. 정리해서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정리를 하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색이 바래졌더라도, 흠이 나고 변형되었더라도 내 손에 익숙하고 자주 사용하는 것들, 보잘 것 없지만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언제나 쓰임을 받고 사용한 후에는 눈에 잘 보이는 자리에 놓인다. 소박한 것이지만 그것들만 있어도 살아가는 데 어렵지 않다. 정리는 버리기만 하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물건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도 포함된다.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가지런히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 정리이다. 삶이 좀 어지럽다면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만 한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세상을 떠나면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책을 남겼다. 정리하지 못하면 도리어 짐이 된다. 길고 긴 인생 여정에 괜히 무거운 짐을 얹을 필요는 없다. 먼 길 가려면 짐이 가벼워야 한다. 짐을 정리해야 홀가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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