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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쓸모 있다

by 박은석


2023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인데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한 번 읽었다가, 다시 읽고, 또다시 읽은 책이 있다.

프랑스 작가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라는 책이다.

수필인 줄 알았는데 삶을 깊이 파헤친 철학서이기도 하다.

이번에 드빌레르의 새로운 책이 나왔는데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다가 드디어 만났다.

<철학의 쓸모>라는 제목이 붙었다.

역시나 문장이 쉽다.

글은 무겁다.

쉽지만 무거운 책이다.

부피는 얇아도 내용은 많은 책이다.

문장이 쉽기에 쉽게 읽힌다.

무슨 말인지 몰라 책을 덮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글이 무겁기에 글을 곱씹게 된다.

어렸을 때 칡뿌리를 씹어 먹었던 기억을 소환한다.

껌조차 귀했던 시절의 시골에선 입안의 심심함을 달래려고 칡뿌리를 찢어서 씹었다.

칡뿌리는 씹으면 씹을수록 달짝한 맛이 스며 나왔다.

오래 씹을수록 깊은맛이 났다.

<철학의 쓸모>가 그런 글맛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에는 고통, 죽음, 우울, 두려움, 인간관계, 사회관계, 돈, 노동, 국가관 등, 누구나 한번쯤은 가졌을 법한 질문들이다.

드빌레르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어떤 말들을 했는지 알려준다.

철학자들이 현대인의 갖가지 아픔에 대한 처방전을 내주는 것이다.

철학은 노교수의 서재에 꽂혀 있는 빛바랜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먼지 쌓인 책처럼 나와는 상관없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의 아픈 문제들을 깊이 해부하고 그 아픔을 고치려고 애쓰는 학문이다.

상한 마음에 적절한 위안을 주는 이야기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아서 복용하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아픔은 진료와 복약만으로는 고칠 수 없다.

철학이라고 하는 마음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철학은 우리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우리 마음이 아픈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사람이 혼자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기 때문이다.

함께 살기 때문에 갖가지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느 겨울날, 매서운 추위가 몰려오자 고슴도치 한 무리가 자신들의 온기로 추위를 물리치기 위해 서로 가까이 모여들었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 난 뾰족한 가시가 서로를 찔러댔다.

따가운 아픔에 고슴도치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서로 떨어지니까 찌르는 것은 없었지만 또 추위가 몰려왔다.

추위를 참지 못한 고슴도치들은 다시 가까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멀리 떨어지지도 않고 가까이 붙지도 않고 적당한 정도로, 최소한의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에게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내면의 공허함이나 무료함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 곁으로 간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사람들에게서 저마다의 고약한 습성이 나타난다.

그러면 서로 견디기 힘들어하면서 헤어진다.

사람들은 이렇게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노래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사랑과 이별이 바로 이 문제를 알려주고 있다.

한때는 세상이 쪼개져도 딱 붙어 있겠다고 한때는 죽일 듯이 미워하는 것은 고슴도치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슴도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삶의 문제들에 대해서 철학에서 처방전을 찾아 제시하고 있다.

철학은 이렇게 쓸모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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