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라고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떤 것인가?
분위기에 압도되는 충동,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는 욕망, 함께 있기 꺼리는 혐오감 같은 감정들은 내 마음속에서부터 일어난다.
이런 것들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내 마음속을 다스리면 된다.
그러나 내 마음 밖에서부터 일어나서 나에게 돌진해 오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잘 씻고 잘 닦아도 바이러스와 세균이 내 몸에 달라붙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은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
부지런히 일을 한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를 얻는 것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인관계를 잘 쌓는다고 하더라도 명예를 얻기는 힘들다.
명예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붙여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나의 통제 밖에 있는 것들이다.
최근에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살 빼기.
그건 분명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적게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살이 빠진다.
7, 8월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살 빼기에 돌입했다.
하루 한 끼를 줄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조금 적게 먹었을 뿐이다.
굉장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하루 1만 보 이상 걸어보려고 했고, 틈이 나면 두세 시간 동안 산을 걸었다.
덕분에 몸무게가 5~6Kg 정도 빠졌다.
그 상태에서 몇 주를 유지하고 있다.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꽉 끼었던 옷이 조금 헐겁게 느껴진다.
거울을 보면 얼굴도 갸름해져 보인다.
기분이 좋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을 통제했을 때는 이처럼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살 빼기뿐만 아니다.
불끈불끈 치솟는 충동과 욕망을 다스렸을 때도 기쁜 마음이 든다.
목표를 성취했다는 마음도 들고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마음도 든다.
그런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주일 정도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은 편하지 않다.
혹시나 나에게 무슨 몹쓸 질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이 염려는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더 큰 염려와 걱정으로 이어진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서 혈압 수치, 혈당 수치, 간 수치 등 여러 수치들에 저절로 관심이 간다.
의사는 운동 열심히 하고 충분한 수면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지만 현대 도시인에게 의사의 권고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건강을 자신할 수는 없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도 갖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건강 관리를 잘 하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통제할 수 없기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리게 되면 사람들은 성질을 낸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똥이 튀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하늘을 향해 원망한다.
하늘에 신이 있다면 왜 자신을 힘들게 하느냐고 따진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신이라면 그런 신을 인정할 수 없겠다고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능이 유한하기에 모르는 게 있고 능력이 유한하기에 못 하는 게 있고, 건강이 유한하기에 질병에 걸리고, 생명이 유한하기에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기에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인데 자꾸 통제하려고 하니까 사달이 난다.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처럼 통제할 수 있는 일은 통제하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