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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취하다
오페라의 왕 베르디에게 인생을 배우자
by
박은석
Nov 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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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2년 동안 합창반 활동을 했었다.
음악 선생님은 변성기가 한창인 우리들을 데리고 노래다운 노래를 만들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
연말에 열린 발표회는 1년간의 연습에 대한 결실의 자리였다.
그 무대에서 우리는 헨델의 <할렐루야>를 불렀고 베르디가 작곡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도 불렀다.
그때는 그 노래들이 얼마나 대단한 노래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선율에 취해서 불렀었다.
이후 <할렐루야>는 성탄절 시즌이 되면 교회에서도 많이 부르니까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거의 듣지 못했다. 그냥 나 혼자서 흥얼거리기 일쑤이다.
내가 베이스 파트였기 때문에 그 선율만 조금 기억할 뿐이다.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로 시작하는 부분이 참 좋다.
책읽기 운동을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서양음악사 같은 책을 보고 있었다.
당연히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소개들이 있었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는 헨델은 시험문제로도 나오니까 외워두었지만 베르디는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에게는 조금 생소했다.
그런데 책을 보고 나니 이 사람 엄청난 인물이었다.
‘오페라의 왕’이라고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페라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았다.
아! 대충 감이 잡혔다.
그러면 헨델의 메시아는 오페라가 아니라 오라토리오라고 하던데 그건 또 뭔가 살펴봤다.
그랬더니 이건 좀 달랐다.
이렇게 우연히 마흔 넘은 나이에 음악 이론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제 나의 관심은 베르디가 지은 오페라들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그 곡에 얽힌 사연까지 알면 더 좋고.
베르디는 <나부코>,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아이다> 등 유명한 오페라들을 작곡했다.
내가 불렀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오페라 <나부코>에 들어 있는 곡이다.
작곡가 베르디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겪은 전쟁, 가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생활 등이 그의 십 대까지의 인생이었다.
이십 대에 들어서면서 스승의 딸을 연모하여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어야 하는데 베르디는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된 딸이 질병을 이기지 못하여 눈을 감고, 아들도 죽고, 아내마저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서른도 안 된 베르디가 더 이상 살아갈 소망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리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작곡을 해야 했다.
만약 음악이 성공하면 어떻게든 용기를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디의 작품은 처절하게 실패하였다.
오페라 작곡가라는 직함을 반납하고 싶은 수치심이 몰려왔다.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 그까짓 것 가지고 그러냐고 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그 사람에게는 지구만큼 크고 무거운 문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작품을 작곡해야 하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던 베르디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내용을 보다가 큰 감동을 받았다.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히브리인들의 모습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심정을 담아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썼다.
그리고 단숨에 <나부코> 전곡을 완성하였다.
오페라 작품을 올렸다.
결과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 베르디는 미친 듯이 오페라 작품들을 작곡했고 계속해서 흥행을 이어갔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이 되었고 오페라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만약, 베르디가 처절하게 고통에 겨운 삶을 살았던 이십 대에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면 우리는 인류사의 보물과 같은 음악들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버텨주었기에, 살아주었기에, 이를 악물고 작곡을 했기에 우리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마음을 씻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견뎌주어서 고맙고 살아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이런 마음도 전염되는지 베르디의 장례식에는 무려 2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참석하여 그를 애도하였다고 한다.
베르디에게 인생을 배우자.
포기하지 말자.
살아보자.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https://youtu.be/ntflUU_xmq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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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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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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