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등 여러 도형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도형은 삼각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네모반듯한 사각형을 생각하지만 사실 사각형은 삼각형보다 불안한 도형이다. 삼각형은 일단 세 변의 길이가 정해지면 어느 곳에 떨어지더라도 그 모양이 동일하다. 하지만 다른 도형은 길이가 정해졌다 하더라도 모양이 변한다. 사각형은 네 변의 길이가 같아도 정사각형이 될 수도 있고 마름모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다리가 세 개인 의자는 다리가 네 개인 의자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의자를 찾아서 앉아보라. 다리가 셋인 의자는 이상하게도 삐걱거리지가 않는다. 반면에 다리가 넷인 의자는 바닥이 조금만 고르지 못하면 금새 삐걱거린다. 그래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카메라의 받침대도 다리가 셋인 삼각대이다.
우리는 보통 숫자가 많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완전하고 안정적인 경우는 대부분 숫자 3으로 연결된다. 미술에서 다양한 색깔의 기본이 되는 원색은 빨강, 파랑, 노랑의 3원색이다. 여기에서 다른 색들이 파생되어 나가는 것이다. 음악에서도 각기 다른 음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화음도 도미솔, 파라도, 솔시레 등 3개의 음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숫자 3에는 이렇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친한 친구들끼리 변치 않는 우정을 구가하려고 할 때도 세 명이 모여서 ‘삼총사’를 이룬다. 심지어 가위바위보를 할 때도 삼세판을 해야 제대로 된 승부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셋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전체를 이루는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 생활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작곡가들은 최소한의 악기로 최고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3중주곡들을 작곡하였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현악3중주이다. 물론 피아노3중주, 현악4중주 등 더 풍성한 음들을 만들어내는 연주곡들도 있지만, 현악3중주는 실내든 실외든 어디서든지 쉽게 연주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래서 현악3중주의 매력은 시대가 변해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생긴 모양은 비슷한데 크기가 다른 이 세 악기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이다. 바이올린은 자그마한 몸에서 높은 음을 발산하고, 바이올린보다는 조금 큰 비올라는 중간대 음을 책임진다. 그리고 들고 다니기에는 덩치가 커서 늘 어깨에 메고 다녀야 하는 첼로는 낮은 음을 담당한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르지만 나는 이 셋 중에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첼로를 좋아한다.
첼로는 낮은 자리에서 침착하고 묵직한 음을 냄으로써 다른 악기들을 감싸준다. 아무리 귀를 찢을 듯한 고음을 내는 악기라도 첼로가 곁에 있으면 부드럽게 소리가 중화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이올린이 빨리 달려가고 비올라가 그 뒤를 쫓아가더라도 첼로는 천천히 가라며 여유를 부린다. 어쩌면 첼로는 “내가 꼴찌 할 테니까 1등, 2등은 너희들이 해. 그래도 난 괜찮아.”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 “바닥은 내가 깔았으니까 너희들은 그 위에서 놀아.” 하면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낮은 곳이 없으면 높은 곳도 없다. 낮은 곳이 튼튼해야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지금 낮은 곳에 있다고 주눅 들지 말자. ‘나’를 밟고서 ‘우리’가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낮은 곳에 터를 잘 닦는 것도 중요하다. 무게중심은 항상 낮은 곳에 있다. 현악3중주의 첼로가 그 사실을 잘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