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책상을 앞으로 살짝 옮겼다.
등 뒤의 공간이 몇 센티미터 넓어졌는데 의외로 훤해진 느낌이다.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인 문구류들도 한 곳으로 치웠다.
깔끔해졌다.
같은 공간인데 그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비포와 애프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공간만 그런 차이를 드러내는 게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그렇다.
미용실 의자에 앉았을 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 어딘지 모를 답답함이 있다.
그런데 몇 분 동안 미용사의 손길이 스치자 인물이 달라진다.
누가 보더라도 훤칠해졌다고 할 것이다.
그냥 둬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손을 대면 훨씬 좋아진다.
편해지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예뻐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똥손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매만지면 더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타고나는 것 같다.
본능적이다.
1만 년 전에 살았던 스페인 사람들은 알타미라 동굴에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에도 벽화를 그렸다.
그 캄캄한 동굴 안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잘 그렸다.
솔직히 내 그림 실력보다 훨씬 낫다.
그 그림만으로도 나는 1만 년 전의 사람들이 굉장히 멋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돌도끼를 들고 사냥이나 하며 살아갔던 미개한 원시인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그들은 아름다움도 추구했으며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성경을 보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각종 동식물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 각각의 아름다움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차이와 아름다움을 담은 것이 이름이다.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하는 능력이 있다.
인류 문명의 모든 산물들은 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발전한 것들이다.
불편한 상황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편안한 물건이 만들어졌다.
산업혁명이니 정보혁명이니 하는 과학의 발전은 아름다움을 추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문학은 글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미술은 아름다움을 그리고 조각하고 만들어 낸다.
음악은 아름다움을 노랫소리로 표현한다.
종교는 아름다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리고 정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모두 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각각의 분야가 다르지만 이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으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의 아름다움으로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찔러버린다.
그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는 전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아름다움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찔렀을 때 나의 아름다움까지도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정치인들을 보면 나는 맞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말을 매우 쉽게 내뱉는다.
서로 마주 서서 잔뜩 인상을 쓰고 오른손을 들고 오른쪽이 이쪽이라고 한다.
마주 선 상대방이 그쪽은 왼쪽이라고 하면 그쪽이 왜 왼쪽이냐며 고함을 지른다.
누구 말이 맞다고 해야 하나? 정치가 아름다운 사회를 만든다고 했는데 오히려 오른쪽 왼쪽도 분간 못 하는 어지러운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알타미라 동굴에 살았던 사람도 라스코 동굴에 살았던 사람도 상대방과 내가 다름을 받아들였다.
소와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였기에 소도 그리고 사람도 그릴 수 있었다.
그 둘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이 된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 아름다움은 나와 상대방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