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장 좋은 길은 지금 이 길이다

by 박은석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 같은 곳에 있는 철제 다리를 건널 때는 죽을 맛이다.

살려달라고 저절로 기도하게 된다.

그 길을 가지 말고 다른 길을 가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텔레비전에서 세계의 험난한 지역을 보여줄 때가 있다.

나는 영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난다.

손을 꼭 모아 쥔다.

그런 영상을 어떻게 찍었는지 대단한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중국의 차마고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사고파는 길이었다고 한다.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는 비단길과 더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육상 무역로였다.

해발 고도가 4천 미터가 넘는 험한 산길이다.

그러니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어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깎아지른 절벽이 수도 없이 나온다.

잠깐만이라도 방심해서 발을 헛디디면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길이 나온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힘든 좁은 길이다.

꼬불꼬불하고 위험천만한 길이다.

그 험한 길을 그 옛날에 어떻게 건너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혼자서는 가지 못하는 길이다.

반드시 몇 사람이 팀을 이루어 서로 도와주어야만 건널 수 있는 길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수없이 생각한 게 있다.

꼭 그 길을 가야만 하느냐는 생각이었다.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좀 더 수월한 길이 있지 않을까? 비록 돌아서 가더라도 그런 길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중국 지도를 펼쳐서 보기도 했는데 차마고도보다 더 나은 길이 없는 것 같았다.

그 길은 중국 운남성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이고 네팔과 인도로 이어지는 길이다.

매우 험난한 길이지만 그 길이 제일 좋은 길이다.




나는 곧게 뻗은 길, 평평한 길이 좋은 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길은 거의 없다.

현대의 고속도로는 강이나 계곡이 나타나면 다리를 놓고 산으로 막혔으면 터널을 뚫으니까 마냥 쭉 뻗은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세상의 모든 길들이 다 꼬불꼬불했다.

오로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최대한 건너가기 쉬운 곳들을 연결해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다.

직선길이라고 해서 다 좋은 길이 아니다.

산 아래서 산꼭대기까지 직선으로 올라간다고 생각해 보라.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클 것이다.

때로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더 편하고 더 빨리 가는 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 길들은 대체적으로 구불구불하다.

사람이 건너기 쉬운 곳을 연결해서 길을 만들었으니까 그렇다.




내 눈으로 보기에 힘든 길이라고 해선 안 좋은 길이 아니다.

내가 건너가기에 어려운 길이라고 해서 나쁜 길이 아니다.

오히려 힘든 길이 좋은 길이고 어려운 길이 쉬운 길이다.

내가 보기에는 차마고도가 굉장히 두렵고 무서운 길이지만 옛날에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차마고도가 가장 좋은 길이고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다른 길을 개척하기보다 차마고도를 더 잘 활용하려고 했다.

인생의 길도 이와 비슷하다.

오늘 내가 걷는 길이 힘들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길이 나에게 제일 좋은 길일 것이다.

물론 다른 길도 있다.

그 다른 길이 더 좋아 보인다.

더 넓고 더 평평하고 곧게 잘 뻗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이 계속 그런 길은 아닐 것이다.

산모퉁이를 지나면 듣도 보도 못한 위험천만한 길로 연결될 수도 있다.

괜히 다른 길을 부러워하지 말자.

내가 가는 이 길이 제일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자.

목적지에 잘 데려다줄 수 있는 길이 제일 좋은 길이지 않은가?

이 길이 그 길일 수 있다.

가장 좋은 길은 지금 이 길이다0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