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은 날은 쌀밥만 먹어도 된다

by 박은석


나는 음식을 가리지도 않고 아무 것이나 잘 먹는다.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는데 그렇다고 싫어하는 음식도 없다.

음식을 탐하지도 않는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안 먹는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웬만해서는 밥을 남기지 않는다.

나에게 할당된 한 공기의 밥은 다 먹는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과 식사할 때면 자주 들었던 말씀들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다.

밥상머리 예절이 있었고 밥상머리 교육이 있었다.


그 중의 몇 가지만 들면,

“어른이 식사하기 전에 먼저 먹지 마라. 음식 씹는 소리 내지 마라. 말 하지 마라. 어른보다 먼저 숟가락 놓지 마라. 먼저 일어나지 마라.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밥 남기지 마라.”

같은 말씀들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숟가락 놓고 밥 안 먹겠다고 할 것 같다.




쌀 한 톨이 귀했다.

쌀이 없다는 것은 먹거리가 없어서 곧 굶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동네 쌀집 아들은 종종 쌀 한 봉지를 들고 운동장에 와서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었다.

나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누런 종이봉지에 쌀 한 됫박을 사서 집으로 왔고.


서울에서는 아이들 도시락을 쌀밥으로만 준비하게 하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리쌀 몇 톨이라도 흩뿌렸다고 하는데 나처럼 시골내기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특히 내 고향 제주도에는 쌀농사가 불가능해서 쌀은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명절에나, 제삿날에나, 아니면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쌀밥을 먹었다.

새하얗게 고운 밥.

제주도에서는 쌀밥을 ‘곤밥’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아마 ‘고운 밥’의 준말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갓 삶은 곤밥의 그 찰진 냄새가 좋다.




봄 한때 모내기철이 되면 대통령이 모내기 현장을 방문해서 농부들을 격려해주었다는 뉴스가 해마다 나왔다.

대통령도, 장관들도 장화를 신고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하는 척 했다.

한 5분이나 했을까 싶지만 뉴스에서는 마치 하루 종일 한 것처럼 보도를 하였다.

온 나라가 쌀 한 톨에 정성을 들이는데 당연히 쌀 한 톨도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한자어 ‘쌀 미(米)’자는 위 아래로 여덟 팔(八) 자가 있고 가운데 열 십(十) 자가 합쳐진 글자라면서 농부가 여든여덟(八十八) 번 땀을 흘려서 쌀 한 톨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할머니는 아예 공휴일에 나를 밭으로 불러내시고서는 김매기를 잘 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그날 나는 속으로 절대 농사를 지으며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까지는 그 다짐대로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그때 배운 밥상머리 교육과 밭에서의 김매기 교육이 여전히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지금도 종종 식탁에 올라오는 밥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질 때가 있다.

이 한 그릇의 밥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스쳐지나간다.

나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굉장히 귀한 존재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땀 흘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계속 밥상머리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숲속을 거닐고 있는데 “쌀밥으로 드릴까요? 보리밥으로 드릴까요?”라고 묻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든다.

당연히 “쌀밥이요!” 외친다.

그러면 옆에서 보리밥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한다.

괜찮다.

어렸을 적에 남들 평생 동안 먹을 만큼의 보리밥을 실컷 먹었다.

이제 나의 남은 날은 쌀밥만 실컷 먹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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