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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고 생각하면 해야 합니다

이종욱 박사를 생각하며

by 박은석


1980년대의 사람들은 그를 ‘아시아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남태평양의 작은 섬 사모아에 가서 나환자들을 치료하며 돌봐준 것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사람들은 그를 ‘백신의 황제’라고 불렀다.

그가 세계보건기구(WHO) 예방백신국장을 지내면서 전 세계 소아마비 발생률을 현저하게 낮춰놨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의 사람들은 그를 ‘유엔(UN)의 성자’, ‘21세기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WHO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청렴결백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보급하고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보급하는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느라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여 너무나 이른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산하 기구의 수장을 맡았던 이종욱 박사이다.

그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2006년 5월 22일 제네바에서 눈을 감았다.




이종욱 박사는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한 1945년에 태어났다.

한양대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한 후 다시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였다.

이때부터 벌써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다.

공부를 하는 중에도 시간을 내서 안양 나자로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센병 환자들은 문둥이라고 불리며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할 때였다.

나자로마을에서 평생의 반려자인 가부라키 레이코라는 일본인을 만났다.

의대를 졸업한 후부터 이 두 사람은 봉사활동의 무대를 더욱 키워나갔다.

편안하게 국내에서 지내는 것을 택하지 않고 남태평양의 작은 섬 사모아로 날아갔다.

국내의 한센병 환자들의 사정도 딱했지만 사모아의 한센병 환자들의 사정도 딱했다.

그는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 한센병 자문관을 시작으로 하여 WHO 사무총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23년간 WHO에서 다양한 사역 감당하였다.




WHO는 유엔 산하의 여러 기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기구로서 세계 192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만도 5천 명이 넘는다고 하니 대단한 기구임에 틀림없다.

이 거대한 기구에 이종욱 박사가 2003년에 제6대 사무총장에 당선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자리에 올랐으니까 책상 앞에 앉아 편안히 일을 봐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종욱 박사는 1년 중 150일 이상을 출장길에 있었다.

30만 킬로미터 이상을 비행했다.

그렇게 많은 비행 스케줄을 감당하면서도 단 두 사람의 수행원만 데리고 다녔다.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은 아예 타지도 않았다.

왜 그러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우리가 쓰는 돈에는 가난한 나라의 분담금도 섞여 있는데 그 돈으로 호강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돈을 아껴서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보급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에이즈 환자의 대부분은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직원들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보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종욱 박사는 달랐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이유가 생기고 그럴듯한 핑계가 생깁니다. 과연 옳은 일이고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합시다. 옳은 일을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라는 걸 명심합시다.”

하지만 그들이 엄청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100만 명의 환자에게만 치료제를 보급할 수 있었다.

실패였다.

그때 그는 다시 말했다.

“적어도 실패는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입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옳은 일을 하려고 자신의 삶을 다 불태운 그는 그만 뇌출혈로 쓰러져 62세의 짧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 한마디는 여전히 살아서 우리 귓가에 맴돈다.

“옳다고 생각하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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