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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히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by 박은석


“임금에게 있어서 하늘은 백성이요 백성에게 있어서 하늘은 먹거리입니다.” 조선 창업을 도운 최고의 책사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에게 전한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라는 뜻을 담아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임금께 바쳤다. 조선 헌법의 기초가 된 이 법전은 후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낳게 하였다. 임금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백성에게 존경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백성이 임금을 공경하는지 아닌지 쉽게 알 수가 없다. 임금 옆에 있는 사람들은 임금에게 좋은 말만 하지 싫은 말은 잘 하지 않는다. 백성이 임금을 존경한다는 말만 한다. 임금이 무슨 말만 하면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라는 극찬을 한다. 혹시나 해서 임금이 궁궐 밖으로 나가더라도 백성들의 실상을 알기가 쉽지 않다. 임금이 궁궐 밖을 나설 때면 따라나서는 신하들만 해도 여럿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여염집 아낙네의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임금이 공식적인 행차를 할 때는 수행 인원만 해도 수백 수천 명이었다. 임금님 얼굴을 보려고 백성들이 몰려들었겠지만 임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모두들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가끔 임금의 시선을 끄는 백성이 있긴 했다. 북을 치고 꽹과리를 치고 소리를 외치는 백성이 있었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면 임금이 너그러워서 그 소리를 들어주었을까?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은 우선 근처에 있는 경비병들에게 붙들려 혼쭐이 났다. 웬 소란이냐고 야단을 맞았다. 간혹 임금이 무슨 사연인지 들어보자고 할 때가 있었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 같은 행운이었다. 로또 당첨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단 흠씬 두들겨 맞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백성의 소리를 들은 임금은 굉장히 당황했을 것이다. 자신의 나라에 이런 억울한 사연을 가진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임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좋은 임금이라는 소리를 들을 테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임금의 기본적인 자질이다. 태종 임금 때는 한양에 신문고라는 벽을 설치해서 억울한 사람은 누구든지 북을 쳐서 자신의 사정을 임금에게 알리는 제도를 만들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북을 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제스처만으로도 백성의 마음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억울한 일이 없을 수 없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 억울한 사정의 공통점은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대로’의 상황은 먹고살기 힘든 사정일 것이다. 부지런히 일을 하면 편안히 먹고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백성이 가장 잘 먹고 잘 살았던 때를 꼽으라면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요순(堯舜)시대라고 할 것이다. 한번은 요임금이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암행시찰을 했다. 그때 한 노인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일하고 저녁에 해가 지면 쉬네. 내가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내가 밭을 갈아 먹고 살아가니 임금님의 은택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먹고살기 편한 세상이 되었으니 임금이 누구인지 신경쓸 일이 없다는 듯이 들린다. 보통의 임금 같으면 이런 말에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임금은 그 노래를 듣고 자신이 백성을 흐뭇해했다. 자신이 정치를 못 했다면 백성들의 입에서 임금의 이름이 오르내렸을 텐데 정치를 잘 했기 때문에 백성이 임금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이다. 백성이 잘 먹고사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지도자가 하늘의 뜻을 실현하려면 백성을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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