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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커다란 텔레비전이 생겼다
by
박은석
Nov 16. 2020
가깝게 지내는 어르신께서 어쩌다가 텔레비전을 한 대 얻으셨다면서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이전에 보던 텔레비전인데 상태는 좋은데 가져가서 쓰면 어떠냐고.
굳이 텔레비전이 필요한 것은 아닌데 거절하기도 애매하고 솔직히 텔레비전 큰 것 있으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아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65인치란다.
조그마한 우리 집을 생각하면 괜찮을까 싶다가 그래도 식구들이 좋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덩치는 크지만 요즘 텔레비전은 가벼워서 혼자서 덥석 들어 올려 자동차에 실어 왔다.
역시나 식구들은 커다란 텔레비전을 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빠가 또 엉뚱한 일을 했다는 반응이다.
뭐,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괜찮다.
조금 지나면 잘했다고 할 것이다.
지금껏 그래 왔다.
특히 전자제품은 더욱더.
나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내가 볼 때는 국가대표 축구 경기나 혹은 LG트윈스의 야구 경기가 고작이다.
요즘은 운동 경기도 컴퓨터를 통해서 보니까 막상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이런 생활이 20년을 넘다 보니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 배우들이나 쇼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들을 비롯한 연예인들의 이름을 거의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여자 연예인들은 다 똑같아 보인다.
젊은 남자 연예인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 집 텔레비전은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65인치 텔레비전이 들어오니까 텔레비전 속 배우들의 얼굴 크기가 내 얼굴 크기와 거의 비슷해 보여서 마치 배우들과 내가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연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살짝 들었다.
정말 신기하고 착각하기 딱 알맞은 기분이다.
어릴 때 우리 집에 처음 텔레비전이 들어왔을 때는 일본에서 지내셨던 할아버지께서 귀국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지금은 용인시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에서나 볼 수 있는 배불뚝이 흑백텔레비전이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그 시절에 시골에 텔레비전 있는 집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저녁 다섯시 반이면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타잔, 마징가제트, 로보트 태권브이 그리고 공휴일의 단골 메뉴인 똘이장군과 김일 프로레슬링도 볼 수 있었다.
동네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서 말이다.
어머니는 연속극을, 아버지는 아홉시 뉴스를, 누나들은 토요일밤 주말의 명화를 즐겨보았다.
가끔씩 찾아갔던 큰집에는 텔레비전에도 문이 달려 있어서 열쇠로 열고서 그 문을 옆으로 밀어야 볼 수 있었다.
그러니 큰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텔레비전을 볼 수도 없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이 고장이 났는데 저녁에 아버지께서 엄청 야단을 치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 두 동생이 잘못했다며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이 목말라하는 것 같아서 주전자에 있는 물을 텔레비전에 부어주었다고 고백을 했다.
야단을 치시던 아버지도 말문이 막혀 차마 더 이상 말씀을 하시지 못하셨다.
벌써 4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그동안 흑백텔레비전이 컬러로 바뀌고 크기도 십 몇 인치에서, 이십, 삼십 대를 지나 칠십 인치가 넘어가고 있다.
모니터도 브라운관, 평면, LCD, LED, OLED로 달라졌다.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목에 힘을 주면서 가르치셨던 선생님들도 아마 댁에서는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을 만지작거리셨을 것이다.
그만큼 텔레비전은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이 되었다.
이제 집에 커다란 텔레비전을 들여놓으니 마치 작은 영화관에 들어온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따서 우리집을 '윤가박스'라고 한다.
오늘은 그 기념으로 영화나 한 편 볼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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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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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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