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어도 함께 있다

by 박은석


오늘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도대체 무엇을 했고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여럿이 함께 있었는데 나 홀로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만 이런 것일까?

오늘만 이런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모두가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 같다.

늘 이래 왔던 것 같다.

함께 있어도 언제나 홀로였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보면 이쪽에도, 저쪽에서 속하지 못하는 이명준이라는 남자가 나온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서로 자기에게 오라고 하지만 그는 끝까지 홀로였다.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그린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홀로 살아가고 있다.




한때 즐겨 읊었던 서정윤의 <홀로서기>라는 시가 있다.

청춘들이 즐겨 가던 찻집의 테이블에는 이 시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곤 했다.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옮긴 것 같아서 빨간색 파란색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베껴 쓰곤 했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때는 많이들 그랬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지금 다시 읊어보아도 가슴이 아린다.

특히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는 부분에서 목 놓아 외치는 시인의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얼마나 만나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안쓰럽다.




어릴 적 아버지는 자식인 우리에게 곧잘 훈계의 말씀을 하셨다.

그럴 때면 우리 6남매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버지가 가르치시는 그 지루한 교육시간을 견뎌야 했다.

“사람 인(人) 자를 봐라. 작대기 하나면 설 수가 없는데 두 개가 서로 기대니까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말씀에 이어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사람 낳고 돈 낳지 돈 낳고 사람 낳은 게 아니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졌다.


아버지에게 반항적이었던 사춘기 시절에는 친한 사람한테 사기당하고 전 재산과 인생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넋두리였다고 치부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정말 중요한 말씀을 들려주셨던 것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서정윤의 <홀로서기>는 홀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간절함을 노래한 시이다.

둘이 만나서 또 다른 하나가 되어 살고 싶다는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홀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었던 주인공 이명준은 홀로 살 수 있는 길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누군가는 군중 속의 고독이라며 광장 안에서 홀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지만 어쩌면 함께 살아가지 못하면 결국 살 수가 없음을 알려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가 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절대 홀로가 아니다 날줄과 씨줄이 서로 엮여있듯이 반드시 다른 사람과 함께 엮여서 살아가고 있다.

같이 나눈 이야기가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도, 힘을 모았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잊어버렸어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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