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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나에게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by 박은석


추석 명절을 맞아 일가친지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도 들지만 뭔지 모를 어색한 마음도 든다.

오랜만에 만난 서먹함은 아니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기 때문에 드는 어색함이다.

어렸을 때는 같이 뛰어놀던 사촌인데 그가 나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하면 열받는다.

부러운 마음이 든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반면에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큰 질병을 앓는다거나 사업이 어렵게 되었다거나 직장에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안타까워하면서도 한켠에서는 어깨를 우쭐거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보다 내 형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면서 행복한 감정이 스며든다.

이러다 보니 좀 잘 됐다 싶으면 가족 친지들의 모임에 나가고 싶고 좀 안 됐다 싶으면 그런 모임에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빠지고 싶어 한다.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도 행복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그는 사실 불행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연구한 사람이다.

좀 씁쓸한 말이지만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행복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보다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소유했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물질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서 얼마나 소유했는지의 문제를 배제하고서 행복을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이 가졌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건 모든 사람이 수긍한다.

재벌들은 다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재벌들은 자기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가진 게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가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얼마나 많이 가져야 하는가?

정답은 단순하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면 된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어떤 사회를 구성하면서 산다.

사회를 구성하면 그 안에 거하는 구성원들 간에 알게 모르게 경쟁의식이 생긴다.

비교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 비교하는 마음 때문에 불행, 불평, 불만이라는 것들이 찾아온다.

비교하는 마음이 없었을 때는 불만, 불평, 불행이라는 것도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부탄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지수가 굉장히 높은 나라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부탄의 행복지수가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부탄 사람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지면서 세계의 다양한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기껏해야 옆집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살았다.

서로의 처지가 비슷비슷했기에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자 자신들의 처지가 불행하게 보였다.

불평과 불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상대방에게 없으면 행복해하고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자신에게 없으면 불행해한다.

철저히 비교의식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판가름한다.

이 점을 잘 파악한다면 행복한 삶을 계속 유지하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철학사조 중에 견유학파(犬儒學派)가 있었다.

개처럼 다니면서도 위대한 스승처럼 사는 학파이다.

견유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디오게네스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서 그에게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은 다 주겠다고 했다.

그때 디오게네스가 위대한 말을 남겼다.

“폐하, 햇빛 좀 쐴 수 있게 비켜주십시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게 세상을 다 줄 수는 있었지만 햇빛을 줄 수는 없었다.

디오게네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들 대신에 자신에게 있는 햇빛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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