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이대로가 좋다

by 박은석


대학시절에 미혼인 여교수님이 계셨다.

머리가 하얗던 걸 생각하면 아마 50대였을 것이다.

머리 염색이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담한 키에 둥근 얼굴, 당당한 목소리를 발하시던 교수님이셨다.

그때는 남자든 여자든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강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곧바로 직장 생활을 했던 친구들 중에는 스물다섯을 전후해서 결혼한 이들도 꽤 있었다.

대학생활을 마친 이들은 대개 직장 생활 1년쯤 지난 후에 결혼을 했다.

여자들은 스물대여섯살쯤에, 남자들은 군복무 기간이 있었기에 스물일고여덟살쯤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안 하고 서른살로 들어가는 것은 굉장한 부담이었다.

늦어도 스물아홉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의 잔소리들이 있었던 시절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스물아홉을 아홉수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데 그 여교수님은 오십이 넘도록 독신이셨다.




스무살의 정열이 팔팔할 때였다.

수업시간에 짓궂은 질문도 서슴지 않고 던졌던 동기들이었다.

전공은 한국어교육이었지만 수업 과목은 국문학이 주를 이뤘다.

나름 문학도 행세를 하고 다니던 때였다.

화창한 봄날이면 날씨가 너무 좋으니 꽃향기를 맡으며 야외수업을 하자고 했다.

스승의 날에는 교탁에 막걸리 한 병 올려놓고 스승의 은혜를 불러드린 후에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댔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에는 바깥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교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 없다며 교수님을 또 밖으로 모시고 나갔다.

문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셔서 그러셨는지, 학생들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그러셨는지, 수업 대신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서 그러셨는지 교수님들도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야외수업을 펼치시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짓궂은 친구 녀석 하나가 그 여교수님께 매우 난처한 질문을 하나 드렸다.

지금도 생생하다.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손을 번쩍 들고 소리치는 그쪽으로 모든 눈들이 움직였다.

교수님은 수업에 관한 질문인 줄 아셨을 거다.

뭐냐고 물으셨다.

그랬더니 그놈이 “만약 교수님께서 20대로 돌아가신다면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그 친구는 아마 교수님께서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딸아들 낳아 기르는 삶을 꿈꿀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질문을 던지진 않았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하시느라 연애를 못했고, 때를 놓쳐서 결혼을 못 하셨고, 그래서 인생을 굉장히 후회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런 질문을 하는 그 친구놈이 좀 무례하다는 생각도 했다.

교수님 입장이 굉장히 난처해질 게 뻔한 질문이었다.

당시에는 독신 여성이라면 결혼을 안 한 여성이 아니라 결혼을 못한 여성이라는 인식이 더 강한 때였다.




그런데 교수님의 대답이 굉장히 충격이었다.

교수님은 차분하지만 매우 단호한 어투로 대답하셨다.

“아이구, 난 이십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내가 이십 대 때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는데. 그러면서 수많은 결정을 하고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그 갈등과 고민과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

순간 강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아마 우리 모두의 마음에 무언가 쿵하고 울리는 소리가 있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인가 해야 했는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일초 이초 삼초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이어졌다.

교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수업하자. 책 펼쳐라.”

우리는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책을 펼치고 수업을 들었다.

그날의 수업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교수님에게 배운 분명한 가르침이 하나 있다.

삼십년이 넘었지만 내 마음에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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