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 5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까?

by 박은석


밤늦은 시간에 식당가 골목길을 돌아서 집으로 가다가 “위하여!” 외치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갔다.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여남은 사람들이 뭐가 좋은지 큰소리로 수다를 떨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연배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보아 같은 직장의 부서 회식시간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큰 소리로 “위하여”를 외쳤는데 도대체 뭘 위하자는 것일까?

부서의 실적이 오르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오래오래 잘 지내기를 위하자는 것이겠지 뭐.

그런 목표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고 한 잔 마시자고 했을 것이다.


정말 그들의 목소리 크기만큼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복잡할 것이다.

‘이 회사가 나를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불안할 것이다.

그래서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도 모른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제까지 아무 일 없고 안전했는데 오늘 갑자기 떨어지는 벼락에 맞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의외로 많다.


국내 굴지의 여행사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꿈의 직장이라고 했던 항공사도 존폐기로에 놓여 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지 못한다니 믿겨지지가 않는데 현실이다.


프랑스의 루이 16세 왕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평생 궁궐에서 실컷 누리며 살 줄 알았을 것이다.

누가 그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안전하다고 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고 영원하다고 하는 것이 영원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까? “위하여!”를 외치며 힘 있게 달려들 수 있는 기회가 열릴까?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라는 소설에서 이런 우리의 상태를 5분밖에 남지 않은 사형수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의 내용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혈기 넘치던 이십대의 젊은 날에 그는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사형 판결을 받았다.

형 집행 시간 20분 전에 신부를 만나고 이러저러한 절차를 밟고 마지막 5분이 남은 상태였다.

누가 보더라도 그는 끝난 인생이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마지막 5분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이 5분이 그에게는 무한대의 시간이고 엄청난 재산처럼 여겨졌다고 했어요.

그는 이 5분 동안 많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데 2분,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 2분, 그리고 남은 1분은 주변을 둘러보는 데 할당했답니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장에서 이렇게 마지막 5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사형집행을 멈추시오!”하는 외침이 들렸다.

사형 대신에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내라는 황제의 명령이 전달된 것이다.

그날 밤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동생에게 편지를 쓰면서 인생의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영원한 행복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편지처럼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4년간의 유배생활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처럼 여겼다.

이런 인생의 경험들이 쌓여서 훗날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단 5분밖에 남아있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절망하기에는 남아 있는 5분이 너무 길다.

영원과도 같은 5분이다.

그 5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껏 생각해보지도 못한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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