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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암 투병 중인 지인을 응원합니다
by
박은석
Nov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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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인 지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몇 달 사이에 10킬로그램 이상 체중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를 배경으로 서 있는 그분의 모습이 마치 나무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우리는 지난날의 즐거웠던 일들을 이야기했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 섞인 말들도 나누었다.
애써 목소리를 크게 했지만 가능하면 눈을 마주치지는 않으려 했다.
눈을 마주치면 마음이 들통 날 것을 서로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물 많은 사람인 것을 알아차렸는지 오늘따라 가을비가 많이 내렸다.
기상 관측 이래 11월에 내린 비 중에서 가장 많은 비가 오늘 내렸다고 한다.
빗방울의 공격을 견디지 못해서 몇 안 남은 잎사귀들마저 길바닥으로 떨어졌다.
빗물 때문에 굴러다니지도 못하고 괜히 하수구만 막고 난리다.
‘그래 낙엽은 저렇게 장렬하게 생을 끝맺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낙엽처럼 인생이라는 길바닥에 잠깐 굴러다니다가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이 못내 서글펐다.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해도 우울한 분위기가 안개처럼 감싸왔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려도 이야기의 끝은 건강에 대한 염려 섞인 말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내 염려와는 다르게 그분은 꼭 건강을 회복할 거라며 마치 조금 있으면 암을 완전히 정복할 사람처럼 말을 하였다.
오히려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는 괜찮다고만 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대화가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다가 그를 데리러 온 자동차가 도착해서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떠나는 그분을 보며 ‘살아야 하는데...
살아야 하는데...’라는 염원이 마음에 메아리쳤다.
참 이상도 하다.
어떤 사람은 사지백체 멀쩡한데 일이 잘 안 풀린다며 살아갈 소망이 없다고 하는데 누구는 병원에서도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자기는 꼭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 사람에게도 이 사람에게도 주어진 하루의 시간은 스물네 시간으로 동일한데 어쩌면 이렇게 생각이 다르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을까?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와 그가 쓴 <해변의 묘지>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그 시는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굽이굽이 길게 이어졌다.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세트(Sète)의 해변에서 발레리는 파도를 보고 있었다.
해변까지 밀려와서 장렬하게 하얀 포말을 터뜨리며 사라지는 파도.
그래서 그곳을 파도의 묘지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파도가 다시 물이 되어 일어났다.
계속.
계속.
발레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게 끝이 아니구나! 다시 살아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까?
비평가들은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쓰듯이 평을 한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아니 파도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파도 앞에서는 바람이 분다.
발레리도 그 바람을 맞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는 순간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졌을까?
아니면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을까?
그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고 적어놓았다.
‘살아야겠다!’
이 얼마나 단순한 말인가?
그런데 그 단순한 말이 내 마음을 울린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바람이 나에게 불어오는데 왜 나는 모르고 있을까?
그 바람이 나에게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라고 외치는데 왜 못 듣고 있을까?
그래. 살아야 한다.
나도 살고 암투병 중인 그분도 꼭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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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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