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의 온도로만 따뜻해질 수 있다

by 박은석


찬바람이 불어오면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어떻게 우리 집을 찾았는지 창문의 그 좁은 틈을 헤집고 겨울바람이 ‘쉥~’하니 음산한 소리를 내면 그 소리 나는 데를 두껍게 문풍지로 둘렀다.

방바닥은 누가 뭐래도 뜨끈뜨끈하게 달궈진 아랫목이 제일이다.

그곳은 척 보면 알 수 있다.

바닥에 벌써 누렇게 지도를 그려 놓았다.

아랫목에 도톰한 솜이불 하나 펼쳐두면 보기만 해도 따스하다.


윗목에는 둥그런 화로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리면 모락모락 하얀 김이 천장까지 피어오른다.

친한 친구가 찾아오더라도 부산떨 필요가 없다.

화로 속에 묻어두었던 밤 몇 개 고구마 두어 개를 끄집어내면 된다.

벌겋게 타들어가는 화롯가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겨울도 따뜻한 계절이 되었다.




문이 꽉 잠겼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철커덕 잠긴다.

창문은 이중으로 단단하게 닫혀 있어서 외풍이 쳐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

수고로이 장작을 패지 않아도, 불쏘시개의 매캐한 연기를 맡지 않아도, 때를 맞춰 아궁이를 때고 연탄을 갈지 않아도, 스위치 하나로 집안 구석구석까지 뜨뜻하게 덥혀진다.


아랫목 윗목이 따로 없다.

바닥에 이불을 깔아놓으면서 온기를 유지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아랫못 이불을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화롯불 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워서 일찌감치 집어치웠다.

물이 필요하면 금방이라도 펄펄 끓여주는 주전가가 있다.

먹고 싶은 것은 냉장고 문 하나만 열고 닫으면 된다.


이 편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따뜻한 것 같지만 추운 계절을 살고 있다.




아무리 방바닥이 뜨끈하고 집안에 열기가 가득하더라도 사람이 차가워질 수 있다.

문풍지를 꼼꼼하게 잘 붙였다고 해서, 때를 맞춰 불을 잘 땠다고 해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화롯불을 끼고 있다고 해서 사람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불로 데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곳은 오직 사람으로만 데워질 수 있다.


사람의 온도는 기껏해야 36.5도 언저리이다.

그 온도로는 물 한 컵도 끓일 수 없다.

봉지커피 한 잔 만들 수 없는 미지근한 온도이다.

따뜻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차갑다고 할 수도 없다.

목욕탕의 36.5도는 뜨끈하다며 좋다고 하고 찻잔의 36.5도는 식어버렸다며 버럭 성질을 낼 것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자기의 기분에 따라, 좋다고 하기도 하고 안 좋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온도 36.5도이다.




그런데 이 미지근한 온도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모이면 그곳이 뜨거워진다.

분명 입김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차가운 겨울나라인 것은 분명한데 그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몸에서 후끈하게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추위가 물러가고 그들의 발걸음은 언 땅을 깨친다.

그들의 열정은 용광로까지도 녹여버릴 기세가 된다.


어디서 저런 열기가 시작되었을까?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

사람의 몸 어느 구석에 저런 뜨거움이 숨겨져 있었을까?

그건 모른다.

단지, 한 사람이라면 36.5도로 끝날 텐데, 두 사람이 모이고 세 사람이 합쳐지면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뜨거움이 솟구친다.

그게 사람이다.


사람을 뜨겁게 하는 데는 불이 필요하지 않다.

불로 사람을 덥힐 수 없다.

한 사람을 뜨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또 다른 한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의 온도로만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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