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설 명절을 보낸 후 우리는 온통 불안한 나날을 보내왔다.
‘그래도...’라는 일련의 희망스런 마음들은 여지없이 꺾이고 한 계단 한 계단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내려갔다.
일상이 무너졌다는 말을 많이 하고 많이 들었다.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했다가 또 어른들이 불쌍하다고도 했다.
아침 10시가 되면 습관처럼 뉴스속보를 들여다본다.
‘어제는 몇 명이었더라...’ 31번 이후 숫자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들도 엄연히 이름이 있을 텐데 그냥 숫자로만 불리었다.
TV에는 연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열띤 목소리로 2021년 초에는 백신이 나오고 연말이면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믿을 수 있을까? 그들은 시청자가 듣고 잊어버리기를 바랄 것이다.
어차피 다시 방송국에 나올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잔뜩 분노에 싸여 있다.
마스크를 똑바로 쓰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몸 갖고 왜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하느냐며 욕지거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는 경찰들과도 곳곳에서 싸우고 있다.
힘이 약한 나라는 아예 군대를 동원해서 국민들에게 꼼짝 말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길거리는 한산하고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
비행기는 갈 곳을 잃었고 호텔은 텅텅 비었다.
예술가들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는 푸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생 최악의 한 해라고들 한다.
지옥 같은 시간이라고도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지난날의 힘들었던 때와 일대일로 비교해 보았을까?
앞으로 이보다 더 힘든 날이 오면 그때는 지금의 이 2020년을 뭐라고 부를까?
페스트를 겪은 사람들은 그 시대가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스페인 독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그때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사스와 메르스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그때를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2020년이 힘겨운 시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인생 최악의 시간들은 아닐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면 그래도 건질 게 많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그 어느 시간도 무의미하게 그냥 버려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2020년이 우리에게 깨우쳐준 좋은 것들이 있을까?
물론 있다.
세상이 마치 우리 것인 양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모습을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얻어 삶과 죽음을 어떻게 대할지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게 하였다.
이전까지는 나 한 사람이 무슨 영향이 있을까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2020년을 지내면서 내 인생은 나 혼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 때문에 가족이, 회사가, 나라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뭐라고....
지금까지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라는 한 사람은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내 맘대로 살았던 결과는 환경의 파괴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나에게 아픔이 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식으로 살면 안 되고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도 아끼고 보살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매일 전해지는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에게도 마지막이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으로 내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칠 때
지옥 같은 현실도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20년은 많이 아프게 지나가지만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깨우쳐준 시간이었다.
정말 고맙다 2020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