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가슴 벅찬 오늘 하루
많이 참으려고 하지 말고 많이 좋아하자
by
박은석
Jan 4. 2021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냥 멋있어 보였으니까.
선생님은 칠판에다 참을 ‘인(忍)’ 자를 써 놓고는 칼이 마음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더라도 견디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교실 앞쪽 벽에는 ‘급훈 인내(忍耐)’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써서 액자에 담아 걸어두었다.
책상 위에 조각칼로 참을 인(忍) 자를 새겨놓는 친구들도 있었다.
참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고 그런 습관을 들이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선생님 자신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수업준비물이 없다며 야단치고, 문제를 잘못 풀었다고 해서 혼내고, 수업시간에 잡담한다고 매를 들었다.
자신도 참지 못하면서 왜 우리에게만 참으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세상이 온통 어지러웠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려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틀어막아야만 할 것 같았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도전하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나 했다.
작은 일에서 큰일까지 모든 일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 있었다.
그것은 ‘빽’이었다.
아는 사람만 있으면 줄을 서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 진료도, 취직도, 진급도, 세관통관도, 심지어 재판도 빽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빽이 곧 능력이고 실력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상대적으로 빽이 없는 사람들은 이 불공평한 상황을 보면서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겠지만 오래전부터 배운 교훈이 있었다.
‘인내’이다.
참자 참자 하면서 관공서 입구에 쓰인 ‘정의구현사회’라는 글을 기대했다.
국가가 나서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데 조금만 참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인내가 길들여졌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꽤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참지 말고 <분노하라>라는 책이 나와서 꽤 인기를 끌었다.
물론 참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참지 않아도 될 때도 있다.
아니, 참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그 상황들을 잘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내는 참으라고 윽박지르며 가르친다고 해서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다져진 것들은 허울일 뿐 실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참다 참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크게 폭발해버린다.
참아온 것 같지만 참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참지 말라고 해도 잘 참는 경우가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가 그렇다.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은 긴 시간을 참으면서 문제집과 씨름을 한다.
암벽등반을 좋아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참고 체력의 한계를 참으면서 산을 오른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Outliers)>에는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세계적인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1만 시간 이상 훈련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비틀즈도 그랬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그랬고, 박지성과 김연아도 그랬다.
그들이 묵묵히 1만 시간 이상을 인내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자기가 하는 그 일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이다.
물론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좋아했다.
그러니까 견딜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도 이 법칙은 적용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참을 수 있는 것이다.
“나니까 참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게 누가 좋아하랬나?’
참으라는 말과 좋아한다는 말은 시소의 양끝과 같다.
좋아하는 마음이 많으면 참는 것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될 것이다.
참는 것을 강요하지 말자.
어떻게 하면 좋아할 수 있을지 알아보자.
많이 참으려고 하지 말고 많이 좋아하자.
keyword
인내
좋은글
감성에세이
46
댓글
10
댓글
10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팔로워
598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깨우쳐준 2020년아, 정말 고맙다!
사랑이 있다면 이 세상은 참 좋은 곳입니다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