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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한때이다

by 박은석


11월 중순이 도둑처럼 불쑥 찾아왔다.

길가 가로수에게서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탄천을 따라 갈대가 하얀 꽃을 피웠고 그 사이로 단풍빛이 찬란하다.

한 해의 결실을 맺느라 자기 힘을 다 쏟아붓고 바람에 흔들리며 쏟아지는 낙엽비를 맞는다.

쟤들은 저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았는데 나는 나에게 주어졌던 시간을 잘 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계절이 11월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열심을 내서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초조해하며 제자리에서 뱅뱅 맴돌기만 한다.

뒤로 돌아가자니 까마득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두렵다.

차라리 12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12월이 되면 되돌릴 수 없는 탄력에 의해서 뒤를 돌아보기보다 앞을 내다보며 살게 된다.

이 한 해는 이 정도에서 내려놓고 그다음 해를 준비한다.

하지만 11월은 다르다.

아쉬움이 많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아쉬움이 많았다.

딱 10년만 젊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일었다.

10년 전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정말 열심히 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 타임머신 같은 것을 만들어 주시든지 아니면 시간 이동을 시키시든지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 같았다.

"하나님, 저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더도 말고 딱 10년 전으로 저를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정말 열심히 후회 없이 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설마 이런 기도도 하나님이 들어주시려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 기도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그에게 나타나셨다.

깜짝 놀라서 엎드린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얘야,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 그런데 너는 기도를 참 많이 하는 것 같구나.”

그 사람은 하나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이전에 이런 기도를 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런 기도를 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그렇게 기도했던 건데요?”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란다 얘야. 얼마 전에 네가 그렇게 기도해서 내가 너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거란다.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네가 10년 앞의 미래에서 한 기도에 대한 나의 응답이란다. 네가 10년 앞에서 기도한 대로 내가 너를 10년 전인 지금으로 되돌려 놓은 거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나자 그 사람에게 큰 깨달음이 생겼다.

그가 불평하고 아쉬워했던 오늘이라는 현재는 미래의 그가 가장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는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그때는 몰랐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었다.

이제 와서 알게 된다.

좁은 세상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았던 때가 좋았다고.

낮은 곳에서 서로 얼굴 마주보며 살던 때가 그립다고.

그리고 또 알게 된다.

먼 훗날에는 지금 이때를 가장 좋았던 때로 여기게 될 거라고.

지금은 힘들고 두렵고 지긋지긋해 보이지만 먼 훗날에는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때였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한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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