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소개, <두 번은 없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

by 박은석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더라?

꽃인가, 아님 돌인가?

야속한 시간,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두려움을 자아내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1923–2012).

1923년 7월 2일에 태어났으니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나치 독일의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동구권의 나라들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세계가 둘로 나뉘어 냉전이라는 혹독한 전쟁을 치르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굵직한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어디를 향하는지 도무지 예측하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부딪히고 튀어 오르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서 '그때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그때 다른 길로 갔더라면'이란 회한도 많이 했을 것이다.

만약 또 하나의 삶이 주어진다면 절대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삶에는 연습이 없다. 최종리허설이 없다.

삶이라는 무대는 올라서는 순간 공연 시작이다.

너무나 어설퍼서 사소한 실수에서부터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삶이라는 무대 안에서 펼쳐진 모든 말과 동작과 침묵의 시간은 그 자체로 완성된 연극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해야지'

마음을 먹지만 오늘의 연극은 오늘의 연극이고 내일의 연극은 내일의 연극일 뿐이다.

오늘의 연극과 내일의 연극은 서로 비교할 수도 없고 아예 비교 대상도 되지 않는다.


실수? 실패?

엄밀하게 보면 삶의 연극에는 실수와 실패가 없다.

실수와 실패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했을 때 생기는 말이다.

비교할 대상이 없을 때는 무엇이 실수인지, 무엇이 실패인지 정의할 수가 없다.

내 삶의 하루를 다른 어떤 하루와 비교할 수가 없다.

시간이 다르고 상황이 다른데 어찌 비교가 가능한가?

비교할 수가 없으니 실수한 삶이라고 실패한 삶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선생님은 나에게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땐 정말 공부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삶을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공부를 못했어도 훌륭한 사람이 된 이들이 있고 그때 공부를 잘했는데도 훌륭하지 못한 이들도 있다.

그때는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부 못해도 괜찮게 살아갈 수 있다.


삶에 두 번은 없다.

삶은 반복 사는 게 아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생은 이번생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다음 생이 있는지는 모른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 생을 사는 것은 다음 생의 몫이다.


두 번은 없다.

두 번의 삶은 없다.

미완성의 삶도 없다.

어제는 어제로 완성되었고 오늘은 오늘로 완성되며 내일은 내일로 완성될 것이다.

오늘 하루의 연극을 잘 마쳤으니 수고했다고 박수를 쳐 주자.

브라보(Bravo)! 브라바(Brava)! 브라비(Bravi)! 브라베(B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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