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고기리 길 끝에 있는 식당에 갔다.
오래된 집을 개조해서 식당을 차렸다.
메뉴도 단출했다.
순두부찌개와 된장찌개 두 종류다.
반찬이 열 가지 정도 나온다.
1만 5천을 지불하고 이 정도의 밥상을 제공받는 것은 호사스럽다.
그래서인지 낮 열두 시가 되기 전에 자리가 다 찬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값싸고 맛있는 집은 늘 사람들이 넘친다.
건물만 봐서는 맛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허름한 옛날 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부가 화려한 것도 아니다.
마치 옛날 초가집이나 흙집에 들어선 기분이다.
그런데 깔끔하다.
예스러우면서도 정갈하다.
누군가 잘 정리한 집 같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나를 맞이하기 위해서 청소를 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열심히 정리한 것 같다.
흔히 돈 많은 집, 삐까번쩍한 집이 정리도 잘 되어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집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어수선하다.
뭔가 정리가 안 된 것 같고 가구들이나 소품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 같다.
돈은 많이 들인 것 같지만 천박스럽게 여겨지는 집이 있다.
반면에 어떤 집은 초라하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을 드러내기도 한다.
값비싼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값싼 가구와 소품들로 집을 꾸며놨는데 그 하나하나가 위엄을 떨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값싼 집 같은데 꽤 품위가 있는 집처럼 여겨진다.
사람도 그렇다.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을 해도 천박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신구 하나 없는 맨얼굴임에도 귀티가 나고, 수수하게 차려입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옷을 날개로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비싼 옷을 입어도 천박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값싼 옷을 입어도 귀티가 나는 사람이 있다.
옷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옷을 만든다.
삶의 많은 시간 동안 남들과 비교하며 살았다.
저 친구는 저렇게 좋은 환경에 둘러 싸여 있으니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라보니 원망스럽기만 했다.
나는 왜 이런 틈바구니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부모님이 원망스러웠고 하늘에서 굽어살펴 보시는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좋은 환경이란 게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편안한 것? 부유한 것? 건강한 것? 대부분 이런 것을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지 알 수 있다.
편안한 생활 다음에는 불편한 생활이 따라온다.
부유한 생활 다음에는 뭔가 부족한 삶이 찾아온다.
건강한 삶 다음에는 아프고 병든 삶이 다가온다.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머지않아 이 좋은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화려한 삶은 돈으로 만들어지는 삶이다.
화려한 삶이 좋은 삶은 아니다.
화려한 삶은 화려한 삶일 뿐이다.
부족하고 가난한 삶은 결코 화려한 삶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부족하고 가난한 삼도 정갈한 삶이 될 수는 있다.
나름대로 멋들어진 삶이 될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재벌 회장님들은 호텔에서 비싼 음식만 먹으면서 살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길거리 포장마차의 떡볶이를 더 먹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으면 내가 불쌍해 보이고 없어 보인다.
그걸 가난이라고 한다.
그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은 나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대단한 삶은 남에게 있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남에게는 없지만 나에게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들이 늘 조아리는 모토가 있다.
“쫄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