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라는 강은 그 폭이 얼마나 될까?
남북으로 1킬로미터 남짓되는 한강보다는 분명히 넓은 것 같다.
한강은 한 시간이면 어쭙잖은 실력으로도 건널 수 있다.
옛날에는 동지섣달 추운 날이 이어지면 한강이 얼었다는데 그러면 걸어서 이삼십 분이면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슬픔의 강 폭은 그보다 훨씬 넓다.
한 시간을 울어도 다 넘어갈 수 없다.
슬픔의 강은 두 팔 벌려 이만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넓다.
슬픔의 강은 얼마나 길까?
허클베리핀과 톰 소여가 여행을 했던 미시시피강만큼일까?
인류 문명을 이끌었던 양쯔강만큼일까?
아니면 브라질의 원시림을 가르는 아마존강 정도일까?
그것도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이집트의 나일강 정도일까?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슬픔의 강은 그 강들보다 훨씬 길 것 같다.
그 강들은 며칠 몇 달이면 노를 저어갈 수 있지만 슬픔의 강은 몇 년이 걸려도 다 지날 수 없다.
프랑스의 지성이라 불리던 롤랑 바르트는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고 했는지 그다음 날인 10월 26일부터 바르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종이 한 장을 4등분해서 나눈 메모장에다 그날그날 떠오르는 감정들을 적었다.
1979년 9월 15일까지 대략 2년 동안 일기를 썼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의 글들이다.
그 글들이 모여 책으로 발간되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이다.
꼬박 2년 동안 바르트는 슬픔의 강에 표류했다.
다 건넜냐고?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애도일기를 마친 후에도 바르트에게는 슬픔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몇 달 후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 후 한 달 만에 생을 마감했다.
<애도일기>를 읽는 순간 우리는 슬픔의 강에 배를 띄운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밀려간다.
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언젠가는 이 슬픔의 강이 끝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슬픔의 강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끝이 있다.
부지런히 강물 따라 내려가면 강 끝 삼각지에 이를 것이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강이 시작하는 시냇물에 이를 것이다.
설령 슬픔의 강을 건너다가 생을 마감한다면 바로 그곳이 슬픔의 강이 끝나는 지점이 된다.
우리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듯이 슬픔의 강도 영원하지 않다.
단지 강의 끝에 다다르려면 얼마나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영원한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이 떠나시면 묘소 옆에 초막을 짓고 3년을 지냈다고 한다.
3년 정도면 슬픔의 강을 어느 정도 건널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몇 해 전에 어머니께서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는데 무척 서운해하셨다.
전에는 꿈에 가끔 보였는데 요즘은 잘 안 보인다면서.
아버지께서 떠나신 지 20년이 훨씬 넘었었다.
어머니는 20년을 노 저어 오셨지만 여전히 슬픔의 강 한복판에 계셨던 것이다.
오늘 슬픔의 강을 건너고 있던 한 사람을 만났다.
애써 밝은 웃음을 짓고 목소리 톤을 높여 인사를 건네왔지만 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강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강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목소리가 크다.
내가 여기 있다는 소리가 강물에 묻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소리 바람소리보다 더 크게 외쳐야 나의 존재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의 강을 건너는 사람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잠시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
잠깐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도.
차 한 잔의 여유 정도.
그리곤 그는 그의 강을 건너가야 하고 나는 나의 강을 건너와야 한다.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슬픔의 강에도 휴게소가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휴게소까지 왔으니까 머지않아 종점에 도착할 걸 알 수 있으니까.
그 끝에서 우리는 인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