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성공 아닐까?

by 박은석

갑자기 수은주가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갔다.

내려간다는 기척도 없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불과 반나절 사이에, 불과 하룻밤 사이에.

이러다가 또 기척도 없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불과 반나절 사이에, 불과 하루 낮 사이에

갑자기 수은주가 10도 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걸 왜 모르냐고!

얼마 전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랬다.

수은주가 내려가면 곧 올라간다.

수은주만 그러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이 다 그렇다.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


내 조상 박혁거세 할아버지는 신라의 임금님이었다고 한다.

2천 년 전이니까 신라가 대단한 나라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명색이 임금님이었으니까 궁궐에서 잘 살았을 것이다.

그럼 그 자손들도 대대로 임금님이 되어 모두 궁궐에서 살았나?

아니다.

임금님으로 살았던 조상님도 있지만 머슴으로 살았던 조상님도 있고 나처럼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간 조상님도 있다..

높은 곳에 올랐다고 해서 늘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면 그다음에는 그보다 낮은 자리에 앉게 된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그다음에는 내려갈 일만 남는다.

내려가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올라가는 것 못지않게 내려가는 것도 중요하다.

등반에 성공했다는 것은 정상에서 폼 잡고 기념 촬영을 하는 게 아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다리를 절더라도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성공한 등반이다.


칼 구스타프 융은 인생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인생 전반기에는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가는 때이고 높이 더 높이 올라가는 때이다.

숨 가쁘게 달려본 사람은 안다.

빨리 달리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걷는 것도 좋겠다는 것을.

높이 올라본 사람은 안다.

높이 올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낮은 곳을 내려다보는 것도 좋다는 것을.

그것도 좋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인생 후반기를 살게 된다.

인생 후반기에는 천천히 걸으며 좌우로 고개도 돌려보고 뒤도 돌아보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때이다.

인생 전반기에는 빨리 달려야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높이 올라야 성공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생 후반기에는 천천히 걷는 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높이 오르지 않아도,

낮은 곳에 머물더라도 오래도록 있으면 그게 성공이라고 믿는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책이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다.

벤자민 버튼이란 사람이 있는데 태어나는 순간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끔찍했겠는가?

그런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베자민 버튼이 점점 젊어지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늙어가는데

그렇게 70년, 80년 지나다 보니까 친구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가는데 벤자민 버튼은 아이가 되고 아기가 되었다.

참 어이없는 콘셉트의 작품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묵직하고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아기로 태어나서 나이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삶을 마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피츠제럴드는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아기로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아기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우리가 아기라면

빨리 달렸다고 해서 성공한 아기라고 할 수 있을까?

높이 올랐다고 해서 성공한 아기라고 할까?

아니다.

아기에게는 성공이라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아기는 그냥 아기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떼를 쓰며 울어도 좋고

방긋방긋 웃어도 좋다.

아기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흐뭇함을 준다.

아기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기처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성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