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할 때마저 흥겨웠다

보르그힐드 달(Borghild Dahl)의 이야기

by 박은석


자기계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가 쓴 <인간관계론>과 <자기관리론>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인 데일 카네기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고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잠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세일즈맨으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적성에 안 맞았는지 물건 파는 일을 그만두었고 한동안 돈이 없어서 쩔쩔매기도 했다.

그러다가 1912년부터 YMCA에서 대화법과 대중연설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의 강의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체적이었다.

실제로 그가 읽고 듣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떻게 해야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 가르쳤다.

그의 강의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자신의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인간관계론>과 <자기관리론>을 출판했다.




이 중에서 <자기관리론>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찾아오는 걱정에 대해서 쓴 책이다.

결론은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10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4번째 꼭지에서 평화와 행복을 부르는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보르그힐드 달(Borghild Dahl)이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설거지가 무척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도 어쩌다 가끔 설거지를 하지만 설거지가 재밌다고 느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었다.

음식물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는 그릇들을 씻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먹을 때는 즐거운데 설거지할 때는 역겹다.

밥공기, 국그릇, 접시들을 씻은 후 숟가락과 젓가락을 씻는다.

싱크대를 닦아내고 수채통에 모인 음식물을 쓰레기 봉지에 담는다.

여기까지가 설거지이다.

하기 싫다.




그런데 보르그힐드 달은 설거지가 흥겹다고 했다.

그녀는 50년 넘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른쪽 눈은 오래전에 시력을 상실했고 왼쪽 눈마저 심한 상처로 덮여 있었다.

그나마 왼쪽 눈에 난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조금은 볼 수 있었다.

책에 얼굴을 바짝 붙인 후 왼쪽 눈을 잔뜩 찌푸려야만 겨우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책에 눈을 바짝 대고 읽다 보니 속눈썹이 책에 닿아서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녀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문학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 후 그녀는 대학에서 가르쳤고 틈틈이 여성 클럽에서 강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서는 눈이 완전히 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나이 52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메이오클리닉이라는 유명한 병원에서 눈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예전보다 40배나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수술 후 그녀에게는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 새롭고 신나는 길이 열렸다.

설거지를 할 때마저 흥겨웠다.


“나는 설거지통의 하얗고 폭신해 보이는 거품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어요.

손을 담가 작은 비누 거품을 잡았죠.

거품을 빛에 비추어 보면 작은 무지개가 형형색색 빛나요.

부엌에 난 창으로 내다보면 참새들이 펄펄 내리는 눈 사이로 잿빛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광경이 펼쳐졌어요.

비누 거품과 참새들을 바라보며 저는 큰 기쁨을 얻었어요.”


그녀의 책 <나는 보고 싶었다(I Wanted to See)>는 이렇게 끝맺는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설거지를 할 수 있고.

거품 속에서 무지개를 보고.

눈 속을 날아다니는 참새를 보았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후에 데일 카네기는


“당신과 나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라고 했다.

더 듣지 않아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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