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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23. 2020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가졌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보다가 “뭐야?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까만색으로 가로 세로 줄을 몇 개 주욱 그어서 크고 작은 면을 만들고 그 면들 안에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검은색으로 덧칠한 것뿐이었다.

정말 그림에 관심 없는 초등학생이 미술시간에 마지못해서 낙서하듯이 그린 것 같은데 그것을 작품이라고 내놓았다.


그림이라고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일본 나고야인지 나가노현인지와 자매결연 행사 때 그린 그림이 발탁되어서 상장과 함께 크레파스 한 세트를 받은 것이 나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의 크레파스 냄새가 느껴지곤 한다.

그다음 잘 그렸다고 칭찬받은 것은 태극기 그리기였다.

이건 그림이라고 할 수도 없다. 30센티미터 자와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다.




성적표에 각 과목의 성적이 수, 우, 미, 양, 가로 표기될 때가 있었는데 나에게 미술과목 성적은 항상 아름다울 미(美) 자였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입학시험에 미술은 영향이 없었으니까.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은 사람의 손도 다섯 손가락을 또렷이 그려내는데 나는 손가락인지 주먹 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게 뭉툭하게 처리한다.

이렇게 미술에 대해서는 젬병인 내가 미술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연애할 때 전시관에 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전시된 그림 앞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아내는 그림을 한 번 쓰윽 보고서는 지나쳐갔다.

나는 이 그림이 무슨 의미를 띠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내 말에 아내는 그런 거 묻지 말고 그냥 보고 느껴지는 느낌만 얻으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림 감상은 그렇게 하는 것이라나..




어느 날 몬드리안의 그림을 책에서 보았을 때 내가 한 말이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였다.

그때 아내는 “보고 그리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맨 처음 이런 구도와 디자인과 색을 사용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얘기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자존심이 있어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맨 처음 그것을 시작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프랑스 미술가 마르셸 뒤샹이 변기를 가져다가 ‘샘’이라고 이름 붙여서 작품으로 내놓았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독창적으로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아무리 흔해 빠진 물건명작이 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형편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제대로 그 가치를 알아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나만의 독창적인 것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대단한 것이다.


경매장에 나온 물건도 같은 것이 두 개가 있을 때보다 하나를 없애버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 되었을 때가 훨씬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대단히 비싼 존재이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적어도 내 휴대폰은 잘 안다.

내 휴대폰은 아무에게나 열어주지 않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가진 에게만 속을 연다.

그 그림은 내 손가락과 내 눈동자에 새겨져 있다.

내 지문과 내 홍채는 나에게 늘 격려한다.

"너는 대단히 특별한 존재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가지고 있어."라고 말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지문과 홍채명작이듯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인생도 분명 명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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