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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28. 2020

아들의 머리를 내 손으로 잘랐다


아들의 머리를 내 손으로 잘랐다!

정확하게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미용실에 가기가 귀찮아서 그런지 아빠가 잘라준다니까 선뜻 머리를 맡긴다.

아직은 머리에 멋을 부리는 나이가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아빠가 군대에서 수백 명의 머리를 잘랐다고 이미 말을 해 놓은 상태였다.


나는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마치고 강원도 홍천에서 8주 동안 운전교육을 받았다.

운전병들을 위한 후반기 교육 훈련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이발병 지원을 했다.

훈련이 끝난 후 저녁시간에 사역하는 것인데 훈련병 머리니까 3밀리, 5밀리로 짧게 깍두기처럼 만들면 되는 거였다.

전기이발기가 워낙 귀했기에 대부분 손으로 가위질하듯이 밀면서 올려 깎는 흔히 ‘바리깡’이라는 놈으로 깎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머리를 깎다가 땜빵처럼 뽑히는 일도 다반사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몇 년이 지난 후 고작 네댓 명이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발기를 하나 구입하고 갔다.

필리핀의 가난한 동네에서는 집에서 이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우리가 이발기를 가지고 왔다는 소식이 알려졌는지 여러 필리피노들이 머리를 깎겠다고 줄을 섰다.

군대에서의 10분 만에 한 명씩 깎아대던 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드디어 한 명이 의자에 앉았다.

머리를 눈으로 재보고 이발기를 들이밀었다.

아, 그런데 머리카락이 잘 잘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보는 눈은 많은데 내 온몸이 긴장하고 있었다.

가위질도 잘 되지 않았다.

외국인의 머리카락은 한국인과 달라서 그런가?

어쨌든 한 30분 정도 걸려서 겨우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발 사역은 끝이 났다.




그런 내가 또 20년 지나서 아들의 머리를 자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에서 만든 이발기와 가위까지 장만을 했다.

화장실에 의자를 놓고 아들을 앉혔다.

혹시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짜증내지 말라고 손에 스마트폰도 들려주었다.


일단 미용사들 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펴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삐져나온 부분을 싹둑 잘랐다.

너무 짧게 잘랐을까 몇 번이나 확인하고, 그다음에는 옆과 뒷머리를 이발기로 밀어댔다.

각도가 제대로 나와야 하기에 머리빗을 살짝 기울여서 머리통과 적당한 각도를 유지했다.

미용사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인데 쉽게 되지가 않는다.

그래도 정성껏 이발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씩 틀을 잡아갔다.

의외로 모양이 괜찮게 나오는 듯 보였다.




이제 슬슬 아들이 지루해질 것 같았다.

이제 거의 다 끝났다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자꾸 고개를 아래로 떨구는 아들에게 조금만 고개를 들라고 사정사정하면서 왼쪽 오른쪽 살펴보았다.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살짝 가위로 자르고 조금 울퉁불퉁한 부분은 머릿결을 잘 맞춰주었다.

다 되었는데 불안하다.

그래서 아내를 불렀다.

한번 보라고.

“와! 괜찮네. 잘 됐네.”

그 한마디에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아들에게 머리 샴푸를 잘 하라는 말을 하고 욕조로 보냈다.

머리를 감고 나오면 다시 한번 제대로 봐야 하는데 아들은 샤워를 왜 이렇게 오래 하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욕실에서 나온 아들이 머리를 말리고 자리에 앉았다.


엥?

머리 한 부분이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서 그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만져보려는데 아들이 짜증을 낸다.

“어어~ 됐어요~!”

아쉬움이 남지만 그 말이 그렇게도 고맙다.

오늘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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