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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30. 2020

12월이 오면 떠오르는 기억들


해마다 12월이 오면 어김없이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소년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직 눈발이 날리기도 전부터 아버지는 집 출입문에 반짝이를 붙이고 알록달록한 꼬마전구를 붙여서 깜빡거리게 만들었다.

또 조그마한 소나무를 구해서 마루 한편에 세워놓으면 우리 6남매가 반짝이 줄을 두르고 하얀 솜을 가져다 붙였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송과 깜박거리는 꼬마전구의 불빛을 바라보며 스르르 환상의 나라로 날아가는 꿈을 꾸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서둘러 숙제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동네 언덕으로 나가서 연을 날리고 공터에서는 자치기와 팽이치기를 하면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손이 트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가 해거름이 되면 급하게 밥을 말아먹고 예배당으로 달려가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하였다.




느지막이 교회 선생님이 오면 예배당 피아노 앞에 모여서 노래를 불렀다.

크리스마스까지 한 달 남짓 남았을 때부터 독창, 중창, 합창단을 구성하여 찬송을 연습하였고 서툰 동작으로 율동을 따라 배웠다.

얼기설기 나뭇가지들로 베들레헴 마구간을 만들고 젊은 목수와 만삭의 아리따운 임산부 역을 나누어 아기 예수 탄생의 연극도 준비하였다.


예배당 한가운데를 차지한 난로가 빨간색 불을 내뿜으면 그 옆에서 귤을 까먹었고, 주전자의 물이 뽀글뽀글 끓어오르면 우리 마음에도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였다.

예배당 꼭대기에서부터 마당까지 길게 늘어진 전선을 따라 오색전구에 불이 밝혀지면 온 세상이 잔칫집처럼 환해졌다.

교회 마당에 있는 종탑에서 종을 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는 모두 밧줄에 매달려 땡그랑땡그랑 종을 치곤 했다.




길가로 창을 낸 레코드가게에서는 성탄 캐럴로 흥을 돋우었고 그 소리에 길을 가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벼웠다.

색종이와 물감으로 정성껏 성탄카드를 만들고 우표와 함께 크리스마스 실(Seal)을 나란히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마음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전야제로 발표회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예배당으로 모여들었다.

1년에 한 번 교회 가는 날이 바로 그 날이었다.

신발 잃어버릴지 모르니 잘 간수하라는 광고가 이어졌고 드디어 한 달 넘게 준비한 노래와 율동과 연극이 선을 보였다.

한 시간 동안 실컷 웃고 즐기는 가운데 성탄의 밤은 깊어만 갔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기라도 하면 밖으로 뛰어나가 입 벌려 눈을 받아먹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다.




기필코 새벽까지 밤을 새우리라 다짐하다가도 스르르 잠들어버리면 아침에 깨어나서 얼마나 억울했던지 1년을 또 어떻게 기다리느냐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다행히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자정을 넘기면 그렇게도 기대하고 기다리던 새벽송 성가대에 합류할 수가 있었다.


하얀 눈길을 저벅저벅 걸어가다가 별똥별 떨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잽싸게 소원도 빌었다.

친구네 집 앞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을 부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마당까지 뛰어나와 한 보따리 선물을 건네주시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성탄의 종소리가 새벽을 밝히며 뎅그렁뎅그렁 울릴 때까지 그렇게 기쁨과 황홀한 마음으로 성탄을 기다렸다.


지금은 성탄 발표회도, 새벽송도,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나오시는 어머니들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그 모든 것들이 현실처럼 또렷이 재생이 된다.

12월이 오면 떠오르는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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