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Dec 01. 2020

출렁다리 위를 걷듯이 살고 있습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다.

심한 편은 아니다.

정말 조금이다.

탁 트인 높은 곳에 올라가면 저절로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는 현상을 보일 정도이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빨려 들어갈 것 같고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정도이다.


가끔 신문에서 어느 높은 협곡에 유리로 스카이워크를 설치했다면서 사진이 나온다.

그런 사진을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진땀이 난다.


내가 심한 편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비행기도 타고 배도 탄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고소공포증 때문에 평생 비행기를 못 탔다고 한다.

어떤 분은 비행기 타기 직전에 우황청심환을 왕창 복용하고서 거의 실신 상태로 여행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아주 조금 있는 편이다.




이런 내가 출렁다리를 여러 번 건넜다.

물론 출렁다리 위에서 내 다리는 무척 떨리고 머릿속으로는 다리 아래로 낙하하는 모습이 상상되고 심장은 발랑거린다.

최대한 시선을 위쪽으로 두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머릿속의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다리 중앙으로 걸어가려니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질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다리 난간 손잡이를 붙잡고 걷는다.


‘만약에 중간쯤까지 갔을 때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처럼 다리가 뚝하고 끊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에는 손잡이를 꽉 붙잡고 절대 놓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다리가 한 번 출렁거린다.

순간 긴장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출렁다리가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일찌감치 건너편에 넘어간 사람들은 어서 오라고 손짓도 하고 소리도 지른다.

하지만 다리 한가운데 멈춰선 나는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다행히 뒤에서 누군가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말을 해 준다.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사람이 꼭 있다.

그러면 앞서 간 사람들은 하나도 안 무섭다며 별로 흔들리지도 않고 안전하다고 외친다.

한 발자국 가면 안 흔들릴까?

다섯 발자국 앞에서는 정말 안 흔들릴까?

아니다.

흔들린다.

다리를 완전히 건너기까지 출렁다리는 계속 흔들린다.

흔들려야 출렁다리다.


그래서 출렁다리 앞에서는 갈등이 된다.

분명히 흔들릴 텐데 가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긴다.

사람들은 내가 산도 보고 계곡도 보고 물도 보면서 최대한 경치를 만끽하느라고 천천히 걸어가는 줄 안다.

어쨌든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다보면 마침내 끝에 다다른다.

겁은 났지만 무사히 다리를 다 건넌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꼭 출렁다리 위를 걷는 것 같다.

순간순간 내가 서 있는 곳이 흔들려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덜컥 겁이 나서 눈앞이 까마득했다.

남들은 쉽게 걸어가는데 왜 나는 힘들게 걸어가야 하는지 원망도 많이 했다.

지금은 중간쯤에나 도착한 것일까?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포기할 수도 없고 여기서 뛰어내릴 수도 없다.


길은 하나밖에 없다.

흔들리는 이 길이 내가 걸어가야 할 유일한 길이다.

난간을 붙잡았다고 해서 그 난간이 나를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난간을 붙잡고 그 자리에 그냥 머무를 수는 없지 않은가?

손을 놓고 발을 떼야 한다.


출렁거리더라도 이 다리를 믿고 한 발자국씩 걸어가야 한다.

흔들려도 출렁거려도 앞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다리 저쪽에 반드시 다다를 것이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