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선물은 당신이 나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by 박은석


정규영 작가의 책 <하루 카피 공부>에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광고카피 366개가 나온다.

하루에 하나의 광고 카피를 소개하는 건데 2월은 윤달이 있는 해를 생각해서인지 29개의 광고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광고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도 있고 일본과 미국에서는 어떤 광고카피가 유행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광고카피 중에서 내가 아는 카피가 나오면 엄청 반갑다.

‘부자 되세요-BC카드’, ‘따봉-델몬트 오렌지주스’, ‘사람을 향합니다-SK텔레콤’, ‘감기 조심하세요-동아제약 판피린’, ‘열두 시에 만나요 브라보콘-해태제과 부라보콘’, ‘손이 가요 손이 가-농심 새우깡’와 같은 광고가 나오면 내 입에서도 CM송이 흥얼거리게 되고 그 광고의 대사들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게 된다.

어떤 광고는 몇십 년 전 공고인데 생생하게 기억난다.

잘 만들어진 광고카피는 마법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일본 광고도 좋고 미국 광고도 좋은데 책을 덮기 직전에 소개해 준 광고에 내 눈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딱 맞는 광고인데 일본 도카이 기차(JR 東海) 광고이다.

인터넷에서 ‘JR 크리스마스 익스프레스 광고’를 검색하면 영상을 볼 수 있다.

1988년에 첫 광고가 나온 후 해마다 광고를 새롭게 제작하는 것 같은데 1988년과 1989년 광고가 제일 마음에 든다.

배경음악은 일본 가수 야마시다 타츠로가 부른 ‘크리스마스이브’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도카이 열차 광고가 제작되는데 배경음악은 한결같이 야마시다 타츠로의 ‘크리스마스이브’이다.

40년째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대 히트 음악이 되는 격이다.

광고 영상은 소녀 감성을 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갔다가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날이다.

기차역에 일찍 나가 이제나저제나 연인을 기다린다.

심장이 타는 애틋한 콘셉트이다.




기차가 들어오고 내릴 사람은 다 내리고 기차는 떠나갔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허탈한 마음에 땅바닥을 발로 찬다.

실망한 표정이 가득하다.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었으니 연락할 방법도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오기는 오는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다시금 돌아서서 그다음 열차가 빠져나간 길을 보는데 기둥 뒤에서 이상한 게 보인다.

선물 박스가 보이더니만 어디서 본 듯한 남자가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춘다.

그 순간 기대와 실망, 긴장과 흥분이 녹아들면서 입에서는 “바보”라는 말이 새어 나온다.

괜히 속상해했던 게 눈물이 된다.

왜 남의 애간장을 녹이는 건지 따져 묻고 싶다.

연인에게 달려가 안기고 앙탈을 부린다.

내레이터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낭랑하게 흐른다.

“돌아와 준 당신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1988년 광고 후 해마다 새로운 콘셉트의 광고가 나오지만 이 광고가 가장 압권이다.




풋풋한 소녀시대의 감성을 살린 영상이지만 청춘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누군가는 멀리 떠나가고 누군가는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핸드폰이 있어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면서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심지어는 AI 기술을 이용해서 죽은 사람도 홀로그램으로 불러올 수 있다.

그래도 나와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두 팔로 껴안고 두 입술을 맞추고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으려면 반드시 내 옆에 있어야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영상으로 충분히 만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체온을 느끼려면 옆에 있어야 한다.

그가 내 곁에 돌아와 주어야만 한다.

그게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서 최고의 선물이다.

광고가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은 바로 당신이란 걸.

당신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최고의 선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0aGVYSE9X0

두 번째 영상이 1988년 광고 영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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