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하, 이건 정말이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마다 읽는 습관이 다르고 관심 분야도 다른데 책읽기의 비결이 이것이오라고 내세울 수가 있을까 모르겠다.
나 또한 1년 200권 읽기 운동을 펼친 지 17년 차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읽을 책은 많고 진도는 느리다.
지난달에 구입한 책 중에서 아직 손도 못 댄 책이 태반이다.
이런 나에게도 책읽기의 비결을 물어오는 중생이 있으니 이 또한 불쌍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뭐라고 대답은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책읽기 운동을 시작한 2009년의 기억 말이다.
그때 읽은 독서 목록 파일이 있지만 굳이 그 파일을 들춰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다.
분량이 얇은 베스트셀러들과 에세이들도 많이 읽었다.
그때는 빨리 많이 읽는 게 목표였다.
책읽기 운동을 시작할 때 자기계발서만큼 동기부여를 강하게 해 주는 책들은 없을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책읽기의 영양제 역할도 했고 진통제 역할을 했다.
몸이 곤할 때 링거 한 병 맞으면 힘이 솟는 것처럼 책읽기의 기운이 좀 떨어질 때, 진도가 지지부진할 때, 목표의식이 약해질 때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다시금 불끈 도전 의식이 생긴다.
해 보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는다.
각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나를 따르라!” 외치는데 그 소리가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그들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긴다.
지금도 종종 기력이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자기계발서를 한 권 읽는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의 단점도 있다.
몇 권 읽으면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다.
내용이 비슷하다.
더 이상 깊은 물로 들어가지 못하는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심리학, 상담학 관련 서적들로 독서의 영역을 넓혀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몰랐던 여러 학설과 이론들을 접하면서 그 내용들을 좀 더 알고 싶은 지적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한 분야를 깊이 연구하는 학자라면 모를까 아침에 출근해서 직장에서 한나절 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집으로 오는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깊이 있는 지식을 쌓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때 손에 집어 들게 되는 책들이 있다.
넓고 얇은 지식을 알려주는 책들, 긴 역사를 하룻밤에 읽게 하는 책들이다.
어차피 세상에는 너무나 방대한 양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고 그 지식을 일일이 들춰보기에는 시간이 없다.
이름만이라도, 개념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걸어온 길들을 인류사, 문명사, 철학사, 음악사, 미술사의 관점에서 탐독한다.
옛 어른들은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고 했는데 책읽기도 그렇다.
책을 보면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넓고 얕은 지식에 관한 책을 읽고 나면 그다음에는 좁고 깊은 지식을 알고 싶어진다.
인간을 알고 싶은 마음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읽게 하고 세상을 알고 싶은 마음은 사회 경제와 정치, 과학과 환경에 대한 책을 읽게 한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게 되면 책읽기도 좌우의 균형을 맞춰간다.
감성적인 책을 읽다가도 그다음에는 이성적인 책을 읽게 되고 딱딱한 책을 읽다가도 그다음에는 야들야들 부드러운 책을 읽게 된다.
더 이상 몇 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표의식은 사라진다.
책읽기의 가속력이 붙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책에 손이 간다.
안 읽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책을 읽은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 것 같을 것이다.
책읽기가 삶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