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도끼가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백범 김구 선생의 1948년 삼일절 기념사

by 박은석


107주년 삼일절을 맞아 김구 선생의 말씀들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나타나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나의 소원은 대한의 독립입니다. 나의 소원은 대한의 독립입니다. 나의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입니다.”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남의 밑에서 부귀하게 사는 것보다 독립한 나라에서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것이 더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다고 했다.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을 꿈꿨다. 침략을 받아 봤으니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했다. 먹고살 만큼의 경제력과 자주국방을 할 정도의 힘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높은 문화수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 책을 읽다가 해방된 지 3년 만에 맞은 1948년 삼일절에 백범 선생께서 삼일절 기념사를 하신 글귀가 보게 되었다.


당시는 38선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던 시절이었다.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팽팽하게 서로를 노려보던 때였다. 그 사이에서 신탁통치가 뭔 말인지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줬어야 할 신문 중 하나인 동아일보에서조차 신탁통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내보낸기까지 했었다.


어쨌든 한 민족 한 국가로서의 독립을 맞지 못하고 한 민족 두 국가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민족의 지도자였던 백범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백범의 상한 마음이 삼일절 기념사에 녹아 있었다. 그 글을 실어 본다.




“우리는 해방되었다는 조국과 통일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3·1절을 맞게 되었다. 돌아보건대, 기미년 3월 1일에는 우리의 민족대표 33인이 전국의 애국동포들과 함께 총궐기하여 왜적으로 더불어 생명을 도(屠, 잡다, 무찌르다)함으로써 조국의 독립을 전취하려 하였던 것이다. 왜적에게 대한 우리의 투쟁은 이 3·1운동을 통하여 더욱 강화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 투쟁은 왜적이 패망하던 그 시간까지 중단된 일이 없었다.


그동안에 우리의 희생은 더욱 컸던 것이다. 왜적의 패망은 우리에게 당연히 자유와 민주와 독립을 주었을 것이어늘 사태는 정반대로 진전되며 동맹국의 군대로 우리의 조국은 양단되고 말았다. 우리는 왜적을 타도하기 위하여 수십 년간 혈투하였다. 동맹군의 승리를 위하여 매일같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여 협조하였다. 그러나 동맹군은 우리 국토를 기한(期限, 기간을 정함, 신탁통치 상황을 의미함)으로 점령하고 말았다. 그 결과로 북에서는 북대로, 남에서는 남대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삼천리강산에는 수운(愁雲, 근심스러운 기색)과 비애가 미만(彌滿, 彌漫, 널리 가득함)하였다. 이때에 있어서 북에서 전해오는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남에서 떠드는 중앙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은 모두가 우리의 조국을 영원히 양분시키는 것으로서 이것은 독립전선에서 사망한 독립투사들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자녀로서 어찌 차마 할 일이겠느냐?


지금 남쪽에서는 일부인사들이 UN의 원조 하에 정부를 수립하면 이 정부는 UN의 회원이 될 수 있다고 하나 이것은 민중을 기편(欺騙)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UN 헌장 제2장 제4조 제2항에 규정되기를 ‘새로 가입하는 국가는 반드시 안보이사회의 추천’을 경유하게 된 바 해회에서 5개 강국이 거부권을 향유하고 있은즉 만일에 소련이 남한 정부의 가입을 거부한다면 가입 못하게 되는 까닭이다. 전자에 이태리·외몽고 공화국 등이 UN에 가입하려다가 성공하지 못한 것도 우리는 본 것이다. 또 그들은 민생문제 해결을 위하여 반쪽 위에라도 정부를 세우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우리는 속지 말자.


최근 구주(歐洲) 통신을 보면 미·영이 점령하고 있는 독일의 영토를 통일하고 그곳에 독일인의 자치정부를 수립할 것을 허락한바 그곳 독일 인민은 그것을 지적하여 독일의 영원한 분할이라고 전체가 반대하는 동시에 그들 전 독일을 통일한 후에 정부를 수립하기로 요청하였다고 한다. 독일의 문화가 우리보다 떨어진 바도 아니요, 민생이 우리보다 낮을 바도 아니언만 그들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것이다. 우리는 타산지석도 보자.


친애하는 자매형제여,

우리의 살길은 자주독립의 한 길뿐이다.

이 길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여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 가지는 못하는 길이다.

주저하지도 말고 유혹받지도 말고 앞만 향하여 매진하자.

내가 비록 불초할지라도 이 길을 개척하고 나가는데는 앞에서 나갈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부월(斧鉞, 작은도끼 큰도끼)이 당전(當前, 앞에 닥침)할지라도 도피하지는 아니하겠다.

친애하는 자매형제여

위대한 3·1절을 지날 때에 3·1절의 역사와 또 거기서 얻은 교훈을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하고 일심일덕으로 자주독립의 길만 향하여 나가기를 다시 결심하자.

우리의 독립은 이미 국제적으로 약속되었다.

이 생명이 계속될 때까지 통일된 조국의 자주독립만을 쟁취하기 위하여 분투하자.

이에서 비로소 우리들이 3·1절을 기념하는 의의도 표현될 수 있다.

바라건대 3·1절을 기념할 때에 제사와 같은 형식에 치중하지 말고 혁명정신을 충분히 천양하라.”




내 앞에 도끼가 놓여 있어서 나를 내려 찍는다 하더라도 나는 갈 길을 가겠다.

살고자 하는 사람은 그 길을 안 갈 수 없다.

아무리 험악하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

그 길은 바로 자주독립의 길이다!!!

이렇게 외치며 그 길을 걸어가신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 내가 독립된 대한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