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by 박은석


임금님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면 적어도 5천 명 이상이 나섰다고 한다. 임금님의 수족을 돌보던 내시들과 안위를 지키는 군사들, 왕비를 비롯한 임금님의 여인들과 수많은 나인들, 임금님 곁에서 정사를 논의해야 했던 신하들과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행차에 함께 했다. 임금님은 지체가 높기에 걸어서 행차를 하지는 않았을 테고 가마를 타든지 말을 타든지 했다. 당연히 가마꾼들과 말을 모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룻길을 행차하면 하룻밤 묵어야 했다. 그러면 누군가는 천막을 치고, 누군가는 밥을 짓고, 누군가는 잠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천막을 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검불을 치우고 땅을 다져야 했다. 밥을 짓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물을 길어와야 했고 누군가는 장작을 준비하고 솥단지를 돌봐야 했다. 잠자리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불침번을 서야 했고 누군가는 화롯불을 지펴야 했고 누군가는 침소에 들어야 했다.




임금님은 조상님 묘에 참배하며 영혼의 힘을 얻는 시간이고 바람을 쐬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고 사냥을 하며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고 온천욕을 하면서 심신을 달래는 시간이지만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더군다나 임금님이 지나갈 길에 겹치는 백성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마을 청소는 기본이었고 임금님이 혹시 그 마을에 머물게 되면 임금님과 높은 양반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내주고 자기들은 외양간이나 처마 밑에서 밤을 지새야 했다. 조선 태종 이방원처럼 사냥을 좋아하는 임금님이 오시면 임금님이 사냥감을 손쉽게 잡을 수 있도록 사냥터를 조성하고 멧돼지나 토끼 같은 짐승도 풀어놓아야 했다. 심지어는 임금님이 활을 쏘아서 사냥감을 잡을 수 있도록 임금님이 있는 쪽으로 짐승들을 몰아주는 일까지 감당해야 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임금님의 행차가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임금님의 행차를 두 번 다시없을 일생일대의 기회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다. 평상시에는 구중궁궐 안에 거하시는 임금님이시기에 얼굴을 볼 기회도 없었고 말소리를 들을 기회도 없었다. 자신의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임금님이었다. 그런데 그 임금님께서 눈앞에 지나가시게 되었다. 내 집 앞, 내 동네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임금님의 얼굴을 보고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자기 얼굴을 임금님에게 비추고 자기 마음의 소원을 임금님께 아뢸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그렇다고 해서 임금님이 모든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임금님은 임금님의 길을 가야 했고 신하들과 군졸들은 그 길을 지켜주어야만 했다. 임금님의 행차를 멈추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백성들과 임금님의 행차를 지키려는 신하들 간의 실랑이가 첨예하게 대치하였다.




군졸들은 임금님 행차를 방해한 백성들을 잡아서 야단을 치고 곤장을 때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야단맞고 곤장을 맞더라도 임금님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북을 치고 꽹과리를 두드리면서 임금님의 시선을 빼앗았다. 임금님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들어보아라!”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임금님의 행차를 막았다는 이유로 곤장 백 대를 맞더라도 임금님의 시선을 끌었다면 괜찮았다. 임금님으로부터 한마디 말을 들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임금님이 신하들에게 “저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어라!”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면 임금님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의 마음은 똑같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내 목소리를 들어주면 좋겠다.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