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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수험일에 드리는 기도
by
박은석
Dec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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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시절이었다.
자신이 지원한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르던 때였다.
원서접수 마감일이 되면 9시 뉴스에서 어느 대학교 무슨 학과는 경쟁률이
얼마였다는 방송을
하였다.
제주도가 고향인 나는 여러 면에서 불리하였다.
일단 원서접수가 시작되면 원하는 학교와 학과를 정해서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당시의 우편시스템으로는 우편물이 섬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1주일 정도는 소요되었을 것이다.
집에 돈이 많으면 서울에 올라가서 며칠 동안 눈치를 보면서 지원할 수도 있었다.
서울 사는 학생들은 원서접수 마감일에 각 학교와 학과의 경쟁률을 살펴보면서 경쟁률은 낮지만 꽤 이름 있는 대학에 접수하기도 했다.
유명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학과에 상관없이 일류기업에 무난하게 취업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서울 학생이 절대 유리했다.
대입수험일이 다가오면 적어도 4~5일 전에 짐을 챙겨서 서울로 올라갔다.
하루는 서울 분위기 파악하고 시험 전날은 면접을 보고 시험 당일은 어차피 쉬어야 했고, 시험이 끝난 다음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4일의 여정이었다.
평상시 여관방이 하루에 2만 원 정도였는데 대입시험 철에는 하루에 20만 원도 했다.
그러니 숙박비만으로도 최소한 돈 100만 원은 들고 와야 했다.
사립대학의 등록금이 100만 원도 안 되던 때였으니 자식을 서울로 보낸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결정이었다.
여자 친구들 중에는 가정 형편상 그냥 고향에 머물러야 했던 이들도 많았다.
여전히 아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던 시절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둘째 누나가 일찍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었기에 그 덕을 많이 봤다.
수험일에는 일찍 학교로 갔다.
1교시가 국어, 2교시가 수학, 3교시가 영어로 이어졌다.
나는 국어는 괜찮고 수학은 자신 있고 영어는 형편없는 실력이었다.
1교시는 역시나 수월했다.
국어교육과를 지원한 사람으로서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았다.
2교시가 시작되었다.
감독관 선생님께서 문제지를 나눠주셨다.
아직 시작하면 안 되는 시간이었다.
보통 이때 두 세 문제 정도는 머릿속으로 풀어나갔다.
그때도 그랬다.
그런데
3번째 문제부터 꼬이기 시작했
다.
어려웠다.
나중에 계산하면서 풀면 되겠다 싶었다.
그다음
4번째 문제를 봤는데 역시 어려웠다.
5번째 문제도 그랬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역시나 막히기 시작했다.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 수학인데
,
수학을 망치면 끝장인데 어떡하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저히 해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답안지는 비어있었다.
이러면 어차피 떨어질 게 뻔한데 차라리 여기서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엉덩이를 들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초조한 마음으로 재봉틀을 돌리며 기도하고 계실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마음이 어수선하면 재봉틀을 돌리셨다.
자식을 서울로 보내고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어머니는 묵묵히 기도만 하셨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자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교시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도록 절반도 못 풀었다.
내 생애 최악의 수학 시험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당당하게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그때 포기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포기하지 않으니까 희망이 생긴 거였다.
대입 수험일에 수험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수험생들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라!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여!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그치지 마십시오!”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만 다가온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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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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