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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애꿎은 고양이를 걷어차지 말라
by
박은석
Dec 4. 2020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마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옆 사람에게로 흘러간다.
이때 나의 감정은 단순히 전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전염시킨다.
그 전염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했는데 퇴근시간이 다 되어 상사로부터 짜증 섞인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때 상사의 나쁜 감정은 고스란히 나에게 전염된다.
그런 감정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는데 식구들이 심드렁하게 대하는 것 같으면 속에 있던 짜증이 순식간에 폭발하며 야단을 친다.
영문도 모르고 야단을 맞은 아들은 씩씩거린다.
그때 마침 거실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가 보이면 달려가서 고양이를 걷어차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거실 구석에는 걷어차인 고양이만 낑낑거린다.
도대체 고양이는 무슨 잘못인가?
심리학 용어 중에 ‘걷어차인 고양이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의 나쁜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전염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렇게 감정이 전염되는 양상을 보면 주로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전염된다.
즉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강한 자가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약한 자에게 감정을 전가한다.
자기보다 약하고 만만하니까 정화되지 않은 자신의 감정을 쏟아버리는 것이다.
이때 그 안 좋은 감정을 뒤집어쓴 사람은 굉장히 기분이 상하여 누군가에게 그 안 좋은 감정을 터뜨리고 싶어 한다.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터뜨릴 수가 없다.
결국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하고 약점을 지닌 사람에게 ‘너 잘 만났다.
한번 당해 봐라’ 하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터뜨린다.
전염병이 1차 전염보다 2차 이후의 N차 전염이 더 무섭게 번지는 것처럼 감정의 전염도 1차, 2차로 이어지면서 그 충격이 더욱 커진다.
감정의 전염이 3차 이상이 되면 폭력적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자신에게 대들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약한 존재에게 폭언과 폭력이 가해질 수 있다.
평상시처럼 거실에서 어슬렁거리던 고양이에게 괜히 발길질을 가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이렇게 걷어차인 고양이는 어떤 마음이 들까?
이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걷어차려는 줄 알고 잔뜩 긴장을 하다가 사람이 더 가까이 접근하면 잽싸게 할퀴고 도망가버린다.
결국 걷어차인 고양이는 자기보다 훨씬 강하고 높은 위치에 있는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끝장을 보자는 식으로 감정을 폭발해버린다.
미치 앨봄이 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라는 책이 있다.
주인공 에디가 천국에서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모두 에디 때문에 큰일을 겪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공을 찾아 길거리로 뛰어든 그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은 사내와 같은 경우들이다.
미치 앨봄은 소설을 통해서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내 감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은 공동체와 사회의 질서를 조율하는 매우 귀한 일이다.
괜히 안 좋은 내 감정을 터뜨려서 인간관계가 어색해지거나 공동체의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버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만 참을 걸’ 하면서 후회한다.
하지만 한 번 쏟아버리면 감정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러니까 안 좋은 감정이 생기면 괜히 애꿎은 고양이를 걷어차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내 마음의 방역을 철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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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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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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