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by 박은석


구두를 새로 샀다.

번쩍거리는 광택이 ‘나는 새 것이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발을 넣어보니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 몇 걸음 걸어보니 조금 어색하다.

아직 이 구두가 내 몸에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하루를 돌아다녔더니 발등과 발목 뒤가 얼얼하다.

조금만 더 신고 있었으면 물집이 생겼을 것 같다.

구두의 가죽 재질이 꽉 힘을 주고 있어서 이런 현상이 생긴 거다.

힘을 좀 빼야 하는데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아직은 기싸움을 하고 있다.


문득 낡은 구두가 그립다.

비록 색이 바래었고 뒤축이 많이 닳았고 조금 너덜너덜해졌지만 내 발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그 편안함이 그립다.

그러나 낡은 구두는 이제 버려야 하고 새 구두로 갈아 신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들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떠날 때가 되면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새것에 대한 기대와 함께 모험의식도 생기지만 두려움도 감출 수가 없다.

옛것과 새것 중에서 어느 것이 좋다고 딱히 말할 수가 없다.

때로는 옛것이 좋고 때로는 새것이 좋다.

좋은 옛것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고 좋은 새것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서 있는 우리는 어느 편을 택해야 할지 몰라 두렵기만 하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기형도는 <대학시절>이란 시에서 익숙한 대학생활을 떠나는 젊은이의 심경을 제대로 노래하였다.

“나무 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대학 교정에서 보내던 시절은 너무나 편안했다.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1학년에서 2학년이 되고 다시 3학년이 되니 덜컥 겁이 났다.

이제 떠날 시간이 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4학년 때는 하루하루가 더디 갔으면 했다.

하지만 시간은 째까닥거리며 더 빨리 지나갔다.


졸업사진을 찍고 여름방학을 맞이하니 한걸음에 겨울이 왔다.

졸업이었다.

더 있으려 해도 있을 수가 없었다.

학과방에서도 동아리방에서도 내 짐을 치워야 했다.

나를 감싸주었던 울타리가 안개처럼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떠나야 했다.

두려웠다.

나를 보호해주던 울타리는 이제 나를 내보내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등을 돌려 울타리 밖을 보니 더 넓은 세상이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창밖의 나무를 보니 얼마 전까지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다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흔들거리고 있다.

내가 잠깐 신경을 덜 쓰는 동안 나무는 정들었던 이파리들을 다 날려 보냈다.

봄여름가을을 지내는 동안 나무는 익숙해졌던 것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이파리의 색깔은 연초록에서 짙은 녹색으로 그리고 알록달록 단풍색깔로 변하였다.

마치 신호등이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듯이 이파리의 색깔이 바뀜에 따라 나무는 떠나보내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준비가 끝나서 실전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다 떠나보냈다.


아마 저 나무도 뼈대만 남은 채 긴긴 겨울을 지내야 하는 것이 무척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남을 수가 없다.

외롭더라도 두렵더라도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야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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