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엉뚱한 구석이 있다.
한 번 꽂히는 일이 있으면 끝까지 가 보려는 마음이 있다.
그러니까 남들이 “미쳤어”라는 말을 듣는 일들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가 사는 분당에서 탄천길을 따라서 한강까지 걸어가는 것은 5시간이 걸렸다.
분당 끝자락의 불곡산에서 산길을 따라 남한산성까지 종주하는 데는 7시간이 걸렸다.
새벽에 동서울터미널에 가서 속초 가는 버스를 타고 한계령휴게소에서 내려서 대청봉까지 미친 듯이 걷고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설악산 짧은 종주를 즐기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 정도 된다.
책 읽는 것도 꽂히면 그 작가의 책을 왕창 구입해서 읽는다.
<토지>, <혼불>, <아리랑> 등 대하소설도 좋아한다.
음악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해마다 12월이 되면 헨델의 <메시아> 전곡 듣기에 도전한다.
<메시아>는 모두 5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우리가 익히 많이 들어본 <할렐루야>는 44번째 곡이다.
일단 전곡을 들으려면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적어도 3시간 정도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메시아>는 오라토리오다.
오라토리오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음악 형식으로서 오페라처럼 연극을 하지는 않고 정해진 자리에서 독창, 중창, 합창을 부른다.
독창과 중창의 경우에는 관객에게 잘 보이도록 앞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오라토리오의 대가는 단연 영국의 궁중음악가였던 헨델이고 그의 대표작이 <메시아>이다.
헨델은 메시아의 작곡 작업을 단 24일 만에 완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초연은 1742년 4월 13일에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렸는데 600명 규모의 공연장에 7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 만큼 인기였다.
<메시아>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로서 1부 예언과 탄생, 2부 수난과 속죄, 3부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루어진 대서사시이다.
그 53곡의 대표곡으로 사람들은 주로 <할렐루야>를 꼽는다.
하지만 나는 <메시아>의 백미는 서곡 다음에 이어지는 두 번째 곡이라고 우긴다.
메시아 서곡은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의 침공에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가슴 아픈 장면을 느끼게 하는 비장한 선율이다.
그런데 그 서곡이 끝나면 테너 가수의 맑고 깨끗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아주 멀리서 한 번, 조금 멀리서 또 한 번, 조금 가까이서 한 번, 그리고 아주 가까이서 크게 한 번 울리는 그 소리는 바로 “위로하라!”라는 메시지이다.
나는 여기서 <메시아> 곡의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위로한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12월이 되면 언제나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가 몰려온다.
새해에 대한 기대감도 들지만 ‘새해에도 올해처럼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다.
한 살 더 먹으면 그만큼 건강이 약해지고 직장에서는 한 살만큼 더 코너에 몰릴 수도 있다.
송년카드를 보면 대개 ‘감사의 계절(Season’s Greeting)’이라고 쓰여 있다.
물론 좋은 말이지만 나는 오히려 ‘위로의 계절(Season’s Comfort)’이라고 하면 좋겠다.
좀 이기적인 것 같지만 감사하려고 해도 내가 너무 힘들면 감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인품이 덜 된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그 다음에 감사가 나온다.
그래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나 나를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우리 인간들은 먼저 위로를 받아야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껏 많은 위로를 받았으니까 이제는 많이 위로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이 세상은 위로와 감사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메시아> 전곡 듣기에 도전하면서 그런 세상이 어서 오기를 기도한다.
헨델의 <메시아> 전곡 듣기 유튜브 링크(하나는 우리말 번역으로 불러요)
https://youtu.be/MOEs6iVKeJM
https://www.youtube.com/watch?v=bR0cEOTpY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