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by 박은석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운동회가 열리면 부모님들은 학교 담벼락에 다닥다닥 붙어서 당신 자식들을 응원하셨다.

체조, 텀블링, 부채춤, 꼭두각시놀음, 박 터트리기 등 다양한 종목들이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운동회의 꽃은 달리기였다.

그중에서도 이어달리기가 가장 관심을 끌었다.

항상 1등을 도맡아 해서 ‘도둑발’이라는 별명이 붙은 아이는 꼭 마지막 주자로 뛰었다.

달리다가 발에 걸려 넘어지는 아이, 바통을 건네주다가 떨어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6학년 때인가 내가 우리 팀의 마지막 주자로 달렸다.

결승선에 다다를 때까지 나는 여유 있게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 팔을 벌려 테이프를 끊으려는 순간 뒤에서 친구 녀석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허망하게 결승선 바로 앞에서 2등으로 밀려난 것이다.

엄청 부끄러웠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공책을 몇 권 더 받았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없이 나 자신을 탓하면서 괴로워했다.

그때의 결승선을 생각하다보니 참 이상하다.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데 결승선은 출발선과 같거나 아니면 고작 출발선 건너편에 있었다.

인공위성에서 보내는 GPS신호에 따르면 거기서 거기다.

부지런히 뛰었지만 제자리로 돌아온 격이다.

만약에 우리의 달리기가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지가 아니라 누가 출발선에서 멀어지는지로 가름한다면 어떨까? 결과는 다 같이 1등이거나 아니면 꼴찌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모두들 출발선에서 조금 떨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그 위치가 그 위치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뛰어도 제자리이고 더 오래 뛰어도 제자리이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힘차게!’라는 올림픽의 모토를 달달 외우고 올림픽 영웅들처럼 더욱 빨리 뛰어야 한다는 강박을 받으며 자랐다.

어디를 향해서 뛰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 생각할 시간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엉뚱한 곳으로 빨리 뛰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천천히 걸어서 10m 앞으로 제대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에는 애벌레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나온다.

저 위에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해서 부지런히 위로 올라간다.

자기보다 위에 있는 애벌레를 끌어내리고 밑에 있는 것들은 밟고, 옆에 있는 것들은 밀치며 올라간다.

그런데 꼭대기에 올라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습을 위에서 보면 제자리에서 꾸물대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달리지만 쳇바퀴만 돌리고 있는 다람쥐를 보며 우리는 헛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혹시 우리도 쳇바퀴 돌리듯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땀을 뻘뻘 흘리며 뛰지만 단 1미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러닝머신 위에 있는 것은 아닐까? 빨리 간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조금 늦더라도 정확히 가야 한다.


내 앞에 동서남북의 모든 길이 열려 있는데 목적지가 어디인지 제대로 보고 가야 한다.

엉뚱한 방향으로 100미터를 뛰어가는 것보다 정확한 방향으로 1미터를 걸어가는 것이 더 낫다.

그러니 제발 조급해하지 말자.

잠깐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마라톤 전쟁의 승전보를 전한 병사는 42킬로미터를 달려서 몇 마디 외치고 목숨을 잃었다.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그렇게 어이없이 죽은 이유는 빨리 달리느라 쉬지 못했기 때문이다.

빨리 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쉴 때는 잠깐 멈추고 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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