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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완성이라서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by
박은석
Dec 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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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어서 집에서 제사를 드린 적이 없다.
대신 기일이면 식구들이 모여서 추모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큰집에서 드리는 제사에 꾸준히 참석했다.
제사상에는 홍동백서 음식들이 제자리를 잡았고 가장 안쪽 가운데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그 위패에는 한문 8자가 쓰여 있었는데 바로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였다.
도대체 이 8자가 무슨 뜻인지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우리 집안에서만 이 8자를 쓰는 줄 알았는데 다른 집에서 똑같이 쓰고 있었다.
지방(紙榜)이라고 하는 이 8자는 종이로 만든 신주(神主)이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분을 모시는 자리인 셈이다.
궁금증이 발동해서 하나하나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우리 조상들이 제사를 지낼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고(顯考)’는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여기로 오십시오.”라고 아뢰는 말이다.
어머니일 경우에는 ‘현비(顯妣)’라고 쓴다.
‘학생(學生)’은 돌아가신 분의 살아생전 신분을 의미한다.
만약 관직을 얻었다면 학생 대신 관직명을 넣는다.
그런데 대부분은 관직을 얻지 못하고 평민으로 사셨으니까 학생이라고 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는 유교사회여서 모든 사람이 유학자(儒學者)라는 것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 평생을 공부했지만 관직에 이르지 못한 학생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의 경우에는 학생 대신에 유학을 따르는 사람이란 뜻으로 ‘유인(孺人)’이라고 쓴다.
‘부군(府君)’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 남자 조상을 의미하고, 여자 조상일 경우에는 본관과 성씨를 쓴다.
‘신위(神位)’는 조상님이 오셔서 앉으실 자리라는 뜻이다.
이렇게 그 뜻을 알고 나니 조선시대 유학을 따랐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학생’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우리 조상들은 평생 군자의 도를 공부했다.
꼭 경전을 펴서 공자 왈 맹자 왈 사서삼경을 외우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모든 삶이 다 공부라고 여겼던 것이다.
관직을 얻으면 학생 대신에 영의정, 좌의정 등 관직을 쓸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출세를 하면 지방(紙榜)의 8자를 고칠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팔자 고친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학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평생 공부해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배운 것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배우고 또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굉장히 겸손한 삶의 태도이다.
1980년대에 활동한 이진관이라는 가수는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로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인생을 쓰다가 마는 편지, 그리다 마는 그림, 새기다 마는 조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계속 써야 하고 그려야 하고 새겨야 한다고 노래하였다.
이 멋들어진 말에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유대인들에게는 ‘티쿤 올람(Tikkun Olam)’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티쿤’은 ‘고친다’, ‘올람’은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고친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미완성의 상태로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속 세상을 고쳐가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고쳐가는 것 중에는 우리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도 미완성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마치 자신이 완벽한 사람인 양 떠벌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옆에는 가고 싶지도 않다.
부족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배울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작업 중이다.
완성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진관 <인생은 미완성>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aFU5PMzV9Ic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멎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 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 해
친구야 친구야 우린 모두 나그넨 걸
그리운 가슴끼리 모닥불을 지피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마는 조각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그래도 우리는 곱게 새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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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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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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