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마치고 군 입대를 하였다.
남들처럼 일찍 갈 수도 있었는데 집안 사정과 내 나름대로의 일들이 겹쳐서 입대가 늦었다.
늦은 나이에 사병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학사장교 시험을 치렀다.
그때는 장교로 지원하는 숫자가 부족해서 지원만 하면 거의 합격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 미달되던 시대에 나는 장교시험에서 장렬하게 떨어졌다.
학점도 괜찮고 체력도 좋았는데 떨어진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서 스물다섯 나이에 막내동생뻘인 아이들과 함께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훈련생은 한 명밖에 없었다.
6주 훈련을 마치고 또 후반기 교육 8주를 마친 후 강원도 홍천에 있는 부대에 배치되었다.
내무반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나이 많은 신병 때문에 꽤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중대장도 나보다 한 살 어렸다.
선임병들은 가급적 나와는 거리를 두려고 했다.
동기들은 한밤중에 여러 번 옥상에 불려 갔었다고 했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오겠다고 해도 오케이였고 비상사태가 내려진 가운데서도 일요일이면 나 혼자라도 교회에 다녀오라고 했다.
운전병이었지만 자신들과 함께 있으면 서로 불편한지 나는 곧바로 수송부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그래도 중대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무슨 고민거리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곧잘 나를 찾아오곤 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잘 돌아간다고 어느덧 나도 말년 병장이 되었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장에게는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었다.
그중의 하나가 경계근무 조 편성을 아주 수월하게 해 주었는데 제일 똘똘한 후임병과 같은 조로 묶어주는 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나에게 중대에서 제일 어리숙한 신병을 붙여주었다.
기분이 묘해서 행정실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그 신병이 너무 적응을 못해서 다른 선임병과 함께 조 편성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나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뭐, 그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드디어 첫 근무를 서는 날 그 후임병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갓 들어온 이등병이 말년 병장을 마주하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보초 서는 초소에서도 그는 달달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친구를 잘 적응시키는 것이 내 임무라고 여겨졌다.
일단은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고 무서운 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피곤하지.”
“이병 OOO! 아닙니다!”
“다 알아. 피곤할 테니까 한숨 자. 보초는 내가 알아서 설 테니까 저기서 쪽잠이라도 자!”
황당무계한 고참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내가 인상 한 번 쓰니까 녀석은 한쪽 구석에서 한 시간을 잤다.
첫 번째 근무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하는데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았다.
두 번째 근무는 좀 더 부드러워졌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다가 내가 물었다.
“너 시 한 편 외울 수 있는 것 있어?”
“이병 OOO!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렇지다.
스무 살 남자애들이 시를 읽고 외우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나?
“남자가 시 한 편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좋아. 내가 한 편 줄 테니까 지금 여기서 외워. 난 보초 설 테니까.”
그리고는 내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놓았던 쪽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 쪽지에는 <즐거운 편지>가 적혀 있었다.
단편소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 선생의 아들 황동규 시인이 열여덟 살엔가 쓴 시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낭랑하게 읊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두 시간 동안의 경계근무를 이어갔다.
다음날 그 후임병의 내무반장이 나를 찾아왔다.
“박은석 병장님! OOO 이병이 달라졌습니다. 틈난 나면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병장님이 시켰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어? 자칫하면 가혹행위라는 누명을 쓰기 딱 좋은 말이다.
하기 싫은데 선임병이 억지로 시켰다면 그것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그런데 눈치를 보니까 내무반에서도 중대장도 다 좋아하는 분위기다.
자칫 고문관이 될 뻔했던 신병이 겁먹지 않고 군대 조직에 차차 적응을 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나씩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의 근무를 마치고 나는 전역을 했다.
그 친구는 아마 내가 떠나고 나서 일병이 되고 상병이 되고 병장도 되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꽤 괜찮은 선임병으로 지내다가 전역을 하였을 것이다. 그랬기를 바란다.
지금은 그 친구도 어느 어여쁜 여인의 남편이자 아담한 집의 가장이 되었을 것이다.
딸도 낳고 아들도 낳아 알콩달콩 잘 키우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기가 보기에 어리숙한 사람에게 <즐거운 편지> 한 토막을 건네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계에 실패하는 병사는 용서할 수 없다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초를 서라고 했는데 그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초소에서 시 한 편 달달 외웠던 그 시절 생각에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