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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쓴다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by
박은석
Dec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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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아침에 아내에게 한마디 했는데 하루 종일 이 말이 귀에 맴돈다.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동안 뭐 특별한 일은 없다.
로또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벼락부자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낙하산을 타보라는 사람도 없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거니와 앞으로도 비슷하게 살 것이 뻔한 내 삶이다.
식구들도 모두 집에 콕 박혀 있으니 어제와 오늘이 찍어놓은 판화처럼 거의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판화의 농도가 좀 다르다는 정도일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은 무미건조한 지금의 이 현실에서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그러니 내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때 아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은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긍정적이어서 좋다는 평은 해주었다.
집을 나서는데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말 한마디가 일으킨 파장이 점점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보름 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게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어쩌면 여태껏 내가 상상치도 못했던 행운을 오늘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보 같은 온달에게 평강공주가 찾아온 것과 같은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 아닌가?
그건 우연이라고 어쩌다가 그 사람에게만 있었던 일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바로 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에 그렇게 좋은 일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때의 내 표정은 어떨까?
당연히 기쁨과 감격과 감사가 어우러진 밝은 모습일 것이다.
그 모습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내가 마음을 그렇게 좋게 먹는다고 해서 오늘 하루의 삶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내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어 한동안 멈춰 서야 했고 내가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에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버리기도 했다.
자동차가 좀 이상해서 정비소에 갔더니 견적이 엄청 많이 나와서 다음에 오겠다고 하며 돌아왔다.
새롭게 도전한 일에는 경쟁자가 너무 많아 쉽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은 망친 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침에 그 말을 계속 지껄이기로 했다.
“12월에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짜증이 사라졌다.
신호등이야 조금 있으면 파란불이 켜질 테고 엘리베이터도 곧 내 앞에서 열릴 것이다.
자동차 수리를 안 해도 타는 데는 지장 없으니 돈이 굳었고 새로운 일에 경쟁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일이라는 반증일 텐데 내가 그 일을 한다면 더욱 좋은 것 아니겠는가?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공존한다.
우리가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따라 행복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다.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면 불행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팔이어서 다행이다.
머리를 다쳤거나 허리를 다쳤으면 정말 큰일이었을 것이다.
그만하면 다행이다.
행복이다.
사업이 잘 되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한 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일 때문에 바빠서 딸 아들의 얼굴을 볼 시간도 없다면 일에 지배를 받는 불행한 사람이다.
유명세를 탔다고 다들 부러워하는데 정작 본인은 외로워 죽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에 취해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당장 오늘은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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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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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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