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의 세계를 저장해야겠다

by 박은석


코로나에 대한 글은 일부러 쓰지 않았다.

사람이 어떤 단어를 생각하면 그 단어에 지배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기분 나쁜 말은 언급도 하지 않으려 했다.

단지 향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한 석학들의 책 두 권을 소개하면서 잠깐 언급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놈을 그냥 둘 수가 없다.

지독하다.

자고 나면 연일 확진자 숫자가 확 늘어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만만한 놈이 아니다.

덕분에 평상시에는 관심도 없었던 질병, 전염병, 바이러스에 대한 책들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대한민국 부모라면 반드시 구입하는 육아 기본 서적인 <삐뽀삐뽀 119>도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말이다.

세계적인 석학 7명을 인터뷰한 <오늘부터의 세계>는 코로나 이후 우리의 세계가 굉장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모험심이 강한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돌아갈 고향과 집, 식구들이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세계가 변한다고 한다.

오늘까지의 세계와 오늘부터의 세계가 다를 것이라고 한다.

덜컥 겁이 나면서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하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니 그 두 세계 사이에 ‘오늘’이 끼어 있다.


이 ‘오늘’을 어떻게 할까?

오늘 너머의 세계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하나?

무엇을 어떻게 준비한담?

막연하다.

차라리 오늘까지의 세계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미래에 대한 최고의 대비는 지난 과거를 잘 정리하는 것 아닐까?

훗날 그 기록들을 보면서 일상의 회복을 꿈꾸게 해야 하겠다.

소중한 우리의 일상을 기억에 담고 글로 남기고 사진으로 보관해야겠다.




1895년은 우리나라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엄청나게 충격적인 해였다.

4월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어 죽음을 맞아 동학운동이 사실상 와해되었다.

10월에는 명성황후가 일본 깡패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힘이 약한 우리는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일본은 조선을 압박하여 우리의 음력 달력을 없애고 양력을 사용하게 했고 12간지를 따라 2시간 터울로 지키던 하루의 시간을 24시간 체계로 바꿨다.

그리고 남자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단발령을 강행했다.

우리의 국모를 해치고 시간을 빼앗아버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우리의 모양새까지 바꿔버리려 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전통을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아예 한양으로 들어가는 4대문 앞에 군졸들을 세워놓고 지나가는 남자는 모조리 잡아서 머리를 잘라버렸다.




우리의 문화가 미개해서 일본이 우리를 문명국으로 만들어주려고 했다는 것은 순 거짓말이다.

머리카락이 잘리면 상투를 틀 수 없고, 그러면 갓을 쓸 수 없다.

당연히 서양식 중절모자를 쓰게 될 터다.

머리에 중절모를 쓰면 옷은 자연스레 양복으로 입을 테고 신발은 고무신이나 구두를 신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나라 기술로는 아직 만들 수 없던 물건들이었다.

일제는 이렇게 아주 사소한 것에까지도 자기들이 생산한 물건을 사서 쓰도록 치밀하고도 치사하게 계산하여 우리에게 접근하였다.


난생처음 머리카락을 잘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조상님을 뵐 면목도 없었을 것이다.

가문에서 처음으로 머리카락이 잘린 후손이 돼 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숨고 도망가도 가위를 든 군졸들을 피할 길이 없던 백성들은 결국 마지막 선택을 했다.

온 식구가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진관으로 간 것이다.




그전까지는 사진을 찍으면 양귀신에게 혼을 빼앗긴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관이 보이면 일부러 돌아서 가기도 하고 카메라 들고 밖으로 나온 사진사에게 돌도 던지곤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세계에 맞닥뜨리려니 그 사진기의 도움을 빌려야 했던 것이다.

머리카락이 잘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는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과 언젠가 힘을 얻고 기회를 얻는다면 반드시 이 모습으로 돌아오리라 다짐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들은 카메라 앞에 섰다.

“하나, 둘, 셋!” 번쩍 하는 불빛과 함께 우리 조상들은 그날까지의 세계를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그들은 줄줄이 이발소로 향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 올이 잘려나갈 때마다 깊은 눈물이 두 뺨을 타서 주르륵 흘렀을 것이다.




단발을 하기 전에 우리 조상들은 다가올 세계를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사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오늘까지의 세계와 오늘부터의 세계가 마치 머리카락 자르듯이 싹 달라진다면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작업도 오늘까지의 기억을 남기는 것이어야겠다.

일단은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기억을 저장해야겠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글로 기록해 두어야겠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오늘까지의 풍경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야겠다.


나중에 누군가 내 머릿속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들을 것이고, 내가 적어놓은 글들을 읽을 것이고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볼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분명히 알려주어야겠다.

서기 2020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오늘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이, 참 아름다웠다고 꼭 알려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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